The Story of Super Mario Bros. 3 _ Gaming Historian_HD

때는 1990년 2월

 

미국 닌텐도는, 자사 최고의 게임중 하나라고 확신한다는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의 출시를 목전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확신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 게임은 일본에서 1년 반 일찍 선행 발매되었고

 

심지어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었음에도,

 

북미 게이머들은 이미 모든걸 알고 있었습니다

 

1989년 내내, 잡지사들은 프리뷰와 티저를 찍어냈고

 

한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게임장면을 보여주기도 했죠

 

몇몇 가게들은 수입판 혹은 해적판을 팔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는

 

새로운 마리오 시리즈 게임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이 게임은, 닌텐도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었음을 증명했습니다

 

계속되는 경쟁사들과의 경쟁속에서도

 

닌텐도는 여전히 비디오 게임계의 왕이었습니다

 

이 게임이 도대체 어떻게 전 세대를 아우르는 게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요?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의 이야기 속으로 함께 가시죠

 

이야기#1 : 역대급 마리오

 

1986년 여름, 마리오 열풍이 일본 전역을 강타합니다

 

(대충 슈퍼마리오가 좋다는 말)

 

닌텐도 패미컴용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는

 

초대박을 쳤고, 3백만장 이상 팔렸습니다

 

일본 베스트셀러 도서는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완전 공략본" 이었고

 

게임을 깨기위한 각종 팁과 트릭들을 수록하고 있었죠

 

마리오 브라더스의 테마송에 가사를 추가한 곡이 나오기도 했는데

 

제목이 "go go 마리오" 였습니다

 

'오늘도 힘차게 마리오가 달리고 달린다'

 

'피치 공주를 구하러 앞으로 나아가자'

 

심지어,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는

 

일본의 비디오 게임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습니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가 나오기 전까지는

 

의회조차도 비디오 게임은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신문기사들도 대부분이 부정적인 반응이었죠

 

하지만, 마리오의 긍정적인 영향은

 

패미컴에 각인된 편견을 말끔히 걷어내 주었습니다"

 

...라고 닌텐도사의 이마니시 히로시씨는 회고 하였습니다

 

이 게임으로 인해, 패미컴의 판매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1986년 6월까지

 

패미컴은 650만대 이상 팔려나갔습니다

 

일본의 가정집 5집중 1집은 패미컴을 보유하고 있었죠

 

슈퍼마리오 브라더스가 대박을 터뜨렸기에

 

속편이 나올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죠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2는 1986년 6월 3일에 발매되었으며

 

이는 전편이 발매된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습니다

 

닌텐도는 이 게임을 패미컴의 새로운 주변기기인

 

닌텐도 디스크 시스템용으로 발매하였는데,

 

특허 디스크를 통해 게임을 구동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디스크는 기존 카트리지보다 제작 비용이 더 저렴했고

 

용량도 더 컸습니다

 

닌텐도는, 향후 발매될 대작들이

 

전부 디스크 시스템으로 나올 수 있기를 바랐고

 

패미컴 게임중 가장 유명한 게임의 속편이

 

기기의 견인 역할을 했습니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2는 2백만장 이상 판매되어

 

닌텐도 디스크 시스템 베스트셀러 게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게이머들은 여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갈망했는데,

 

이 게임이 완전한 속편이라기 보단

 

확장팩에 가까웠기 때문이었죠

 

외관상으로는, 1편과 2편은

 

사실 거의 흡사했습니다

 

2편의 난이도는 살인적이었기 때문에

 

신규 게이머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닌텐도 마저도 이 게임을 홍보할때

 

"초 고인물 용" 이라는 라벨을

 

게임 패키지에 표시할 정도였죠

 

그리고 진정한 속편을 원하는건 게이머들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1편과 2편의 제작에 관여했던

 

일명 R&D4라 불리던 팀은

 

패미컴용 역대급 마리오 게임을 선보일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닌텐도는 바로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10명이 넘는 인원으로 구성된 R&D4 팀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의 개발을 맡게 됩니다

 

팀의 리더는 미야모토 시게루 였습니다

 

만약 마리오가 닌텐도의 미키마우스라고 치면

 

미야모토 시게루는 닌텐도의 월트 디즈니인 셈이었죠

 

1981년에, 그는 마리오라는 캐릭터를 창조했으며

 

그 이후로 마리오는 닌텐도의 얼굴마담이 되었습니다

 

미야모토는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2의 개발당시 제작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습니다

 

미야모토는 중요인물로서 너무나도 많은 프로젝트에 관여했지만

 

이번만큼은 속편을 만들기 위해 모든것을 바칠 작정이었습니다

 

그는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의 제작에 있어

 

모든 요소를 하나하나 감독하였습니다

 

미야모토의 오른팔이었던 테즈카 타카하시는

 

이 게임의 디렉터로 임명되었습니다

 

테즈카는 당시 시점으로 2년전에 24살의 나이로 닌텐도에 입사하여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와 젤다의 전설의 개발과

 

디자인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 이후, 테즈카는 디렉터로서의 첫 업무를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2를 통해 시작합니다

 

빡빡한 마감 일정 이었지만, 그의 업무성과는

 

그가 이 업무에 가장 적합한 인물임을 증명했죠

 

하지만,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의 개발과정은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메인 프로그래머 였던 나카고 토시히코는

 

1983년부터 닌텐도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아케이드 게임들을 패미컴으로 포팅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그의 진가는 미야모토와 테즈카를 프로그래밍으로 서포트 할때 발휘되었는데

 

젤다의 전설과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에 대한 그들의 아이디어를

 

프로그래밍을 통해 구현하였습니다

 

작곡업무에는 콘도 코지가 홀로 임명되었습니다

 

콘도가 1984년에 닌텐도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음악과 음향효과는 프로그래머들이 담당했죠

 

콘도는 닌텐도의 음향 전담 초기멤버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베테랑들의 협력과 더불어, R&D4 팀은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하는 젊은 디자이너들과 프로그래머들을 확보했습니다

 

그들 중에서도 신입으로 고용된 타나베 켄스케는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의 레벨디자인 뿐만 아니라

 

꿈공장 : 도키 도키 패닉의 디렉터 업무도 맡았습니다

 

프로그래밍의 귀재인 모리타 카즈아키는

 

19살에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의 프로그래밍 작업을 도왔습니다

 

그래픽 아티스트인 에구치 카츠야의 재능은

 

미야모토의 이목을 끌었고

 

결국 그는 레벨 디자이너로서 채용되었죠

 

패미컴을 플레이 하며 닌텐도에 입사하기를 꿈꿔왔던

 

코노 히데키도 이 게임의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팀이 꾸려지자, 미야모토는 비로소 역대급 마리오 게임의 제작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데엔 너무나도 많은 요소들이 필요했지만,

 

운 좋게도 그들은 해낼 수 있었습니다

 

비록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2가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으로 발매되기는 했지만

 

카트리지 기술의 진보로 인해

 

디스크 시스템은 빠르게 쇠퇴했습니다

 

칩 가격은 내려갔고

 

저장능력은 올라갔죠

 

닌텐도는 내부적으로 MMC 칩을 개발했고

 

이를 통해 패미컴의 잠재력이 커졌습니다

 

개발자들은 상상조차 불가능했던 게임들을 만들 수 있게 되었죠

 

미야모토는 패미컴이 롱런할 수 있었던 이유를

 

MMC 칩에서 찾습니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는 MMC3 칩을 활용하였고

 

이를 통해 더 나은 그래픽, 스크린 스플리팅, 사선 스크롤링,

 

그리고 더 많은 메모리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요소들을 통해, 테즈카는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죠

 

"우리는 전편의 난이도와 스테이지 디자인을 바꾸는 것으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2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똑같은 방법을 사용할 순 없었기에...

 

저는 모든것을 다 바꾸고 싶었습니다"

 

...라고 테즈카 타카하시가 회고했습니다

 

R&D4 팀의 첫 아이디어는 시점을 바꿔보자 였습니다

 

그들은 쿼터뷰 시점의 마리오 게임을 만들어 보았지만

 

미야모토는 시큰둥 했습니다

 

"머리위 사선에서 바라보는 것은

 

"지면상의 거리에 대한 감각이 둔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시점으로는 개발에 난항을 겪을 거라고 말했죠"

 

...라고 미야모토가 회고 하였습니다

 

팀은 이 아이디어를 폐기했고

 

다시 사이드 뷰 시점으로 돌아왔습니다

 

닌텐도는 슈퍼마리오 게임들을 육상게임들 이라고 언급했습니다

 

플레이어들은 자유롭게 움직이고

 

빨리 뛰고, 높게 점프하죠

 

"이런 유형의 게임은 어리고 서툰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동시에 숙련된 사람들도 질리지 않고 플레이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미야모토는 말합니다

 

이러한 게임철학은 이번에도 고수되었습니다

 

R&D4 팀은, 게임을 좀 더 역동적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고안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사면을 마리오가 슬라이딩 하게 하고

 

물체를 집어 발로 차거나 공중을 날게 만들었죠

 

그래픽적으로, 마리오의 모습은 이전 게임과는 달라져야만 했습니다

 

1편과 2편에서, 마리오의 모습은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R&D4 팀은 마리오의 세계를 완전히 바꿉니다

 

1편과 2편의 요소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죠

 

모든 캐릭터, 적, 아이템,

 

배경까지도 전부 새로 그렸습니다

 

그래픽도 한층 더 귀여워졌습니다

 

테즈카 타카하시 디렉터 덕분에 말이죠

 

그는 이전의 마리오 게임들에서

 

대부분의 사물들에 눈을 달아주었고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에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는 온갖것들에 눈을 달아주고 싶어해요"

 

...라고 디자이너인 에구치 카츠야가 말합니다

 

채색 역시 밝고 다양해졌습니다

 

나무와 수풀들이 화면에서 춤을 추고

 

연극 분위기가 나는 요소도 있습니다

 

게임 인트로에서는 커튼이 올라가고

 

매달려 있는 발판이며, 배경에 나사로 고정된

 

블럭들이 세트로 나오죠

 

마리오는 각각의 스테이지를 퇴장하는 방식으로 끝냅니다

 

R&D4 팀은 모든 새로운 월드에도 이러한 요소들을 도입하였습니다

 

이제 마리오는 각자의 고유한 테마가 있는

 

8개의 월드를 탐험하게 됩니다

 

초원, 사막 언덕,

 

바닷가, 거대 섬

 

하늘, 빙원

 

토관 미로, 쿠파의 성을 말이죠

 

디자이너들은 정신없이 일했습니다

 

코노 히데키는 이것이 결코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눈종이 위에 투사지를 겹친채로

 

매일매일 공들여서 스테이지를 그렸죠"

 

...라고 그는 회고합니다

 

작업이 완료되면, 디자이너들은 그들이 그린 스테이지를

 

프로그래머들이 있는 좁은 방으로 가져갔고

 

프로그래머들은 모눈종이를 맵 데이터로 프로그래밍 했습니다

 

정말 기나긴 과정이죠

 

디자이너들은 그들의 작업물이 스크린에 나오는것을 보기위해

 

하루종일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버그들이 발생했죠

 

모든 스테이지를 잇기 위해서

 

팀은 월드맵 요소를 추가하였습니다

 

각 스테이지들은 이제 비선형적인 방식으로 플레이 되었죠

 

이제 플레이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각각의 월드를 클리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R&D4 팀이

 

이런 새로운 월드들을 고안해 낼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장소에서

 

영감을 얻었을 지도 모릅니다

 

1987년, 미야모토와 그의 R&D4 팀원들은

 

새로운 영감이 필요했고

 

그들은 미국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들은 뉴욕 시티, 샌프란시스코,

 

플로리다 올랜도에 위치한 디즈니월드 등 다양한 장소를 방문했습니다

 

디즈니 월드는 다양하고 독특한 곳들이 많았고

 

이곳들은 마치 동화세상처럼 느껴졌습니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 역시

 

다채로운 8개의 월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공원 중앙에 위치한 신데렐라의 성은

 

모든것을 하나로 이어줍니다

 

그리고 이 점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3 에서도 비슷하죠

 

각 월드별로 하얀 성이 있고

 

이 성들은 플레이어들을 인도합니다

 

다음 월드로 넘어갈때 중요한 역할을 하죠

 

닌텐도의 그 누구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가

 

디즈니 월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공식적으로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유사점은 흥미롭습니다

 

새로운 그래픽과 스테이지들외에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에서 추가된 요소들은 많습니다

 

R&D4 팀은 새로운 파워업들을 추가했습니다

 

미야모토의 아이디어 중에는 마리오가 공룡을 타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는 초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때부터 이 요소를 추가하고 싶어했죠

 

하지만, 기술적 제약으로 인해 실현되지는 못했습니다

 

이에 타협하고자, 테즈카 타카하시 디렉터는 아이디어를 하나 냈는데

 

마리오가 동물에 타는것 대신 동물로 변신하는 것이었죠

 

정말 좋은 아이디어 였습니다

 

마리오는 다양한 파워업과 복장들을 통해

 

동물로 변신하여

 

고유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슈퍼 나뭇잎은 마리오를 너구리로 변신시키고

 

마리오가 꼬리로 적을 칠 수 있게 해줌과 동시에

 

하늘을 완벽하게 날 수 있게 해줍니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능력은 초기에는 지나치게 사기였습니다

 

수석 프로그래머인 나카고 토시히코는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죠

 

"하늘을 나는 능력을 너무 남용하면

 

"우리가 힘들게 만든 지상의 모든것들이

 

"무용지물이 될 겁니다" 라고 말이죠

 

하지만 테즈카는 분명 해결방안이 있을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타협안으로, 프로그래머들은 이 능력에 몇가지 제한을 걸게됩니다

 

마리오는 질주를 해야만 날 수 있게 되었고

 

비행능력은 잠깐 동안만 쓸 수 있도록 말이죠

 

개구리 복장은 더 높게 점프하고, 더 빨리 수영할 수 있게 해주지만

 

지상에 있을때는 느려지게 되죠

 

망치복장은 마리오가

 

망치를 투척할 수 있게 해주고

 

방화등껍질로 몸을 보호할 수 있게 해줍니다

 

또한, 일본 신화에 기반한

 

타누키 복장도 추가되었습니다

 

석상으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제외하면

 

나뭇잎 너구리와 같습니다

 

석상은 잠깐동안 무적으로 만들어주죠

 

미야모토는 이 타누키 복장을 좋아했습니다

 

"외국인들은 이 요소를 뜬금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이 요소가 기발하다고 생각되서

 

"삭제하지 않고 남겨두었죠"라고 미야모토는 말합니다

 

추가로, 누군가가 낸 아이디어 중에는

 

마리오가 켄타우로스로 변신하는것도 있었습니다

 

받아들여지진 않았지만요

 

또한, 새로운 능력의 적들이 추가되었습니다

 

마리오를 굴복시키려고 말이죠

 

물론 익숙한 적들도 여전히 나옵니다

 

굼바, 엉금엉금, 해머 브라더스 같은 애들 말이죠

 

하지만, 새로운 적들이 잔뜩 등장합니다

 

부웅부웅, 가봉, 거대 물고기 같은 애들요

 

몇몇 적들은 개발진들의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들도 있습니다

 

멍멍이 같은 경우, 미야모토가 어린시절

 

이웃집의 강아지 때문에 생긴 나쁜 기억으로 인해 탄생했죠

 

부끄부끄는 아마도

 

평소에는 수줍은 여인이지만 남편이 야근을 하면 불같은 여인으로 돌변하는

 

테즈카 타카하시의 부인을 모티브로 만들어졌을 겁니다

 

쿠파의 일곱 자식들은

 

R&D4 팀의 젊은 디자이너들을 본따 만들어 졌습니다

 

그들이 열일 해 주는 것에 대한 미야모토 나름의 보상 방식이었죠

 

새로운 파워업과 적들 외에도, 새로운 아이템들 역시 추가되어,

 

모험도중에 이 아이템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디어는 게임에 서툰 플레이어들을 위해 도입되었고

 

어려운 스테이지를 깰 수 있도록 좀 더 기회를 주고자 함에 있습니다

 

뮤직박스는 맵 화면에서의 해머브라더스들을 잠재워

 

마리오가 몰래 지나갈 수 있도록 해줍니다

 

워프피리는 젤다의 전설 시리즈에서 따온 것으로,

 

마리오가 다음 월드로 넘어갈 수 있게 해줍니다

 

또한 배터리 세이브 기능이 없는 카트리지의 한계를 보완하기도 하죠

 

망치는 장애물을 부수고

 

지름길과 비밀루트를 나타나게 해줍니다

 

김수한무의 구름은

 

플레이어들이 스테이지 한 개를 건너뛰게 해줍니다

 

P날개는 한 스테이지 내내 무한으로 날 수 있게 해주는데,

 

초기 너구리 복장에 있었던 기능이죠

 

이러한 많은 변경점들은 미야모토가 이 게임에 대해 내세운

 

두 가지의 중요한 개발컨셉에 의한것으로,

 

첫째, 실력을 막론하고 모든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즐겁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초심자라 할지라도, 스테이지 전반에 흩어져 있는

 

목숨 업, 동전들, 파워업들을 찾을 수 있으며

 

월드맵 곳곳에 위치한 미니게임들과 키노피오의 집은

 

플레이어들에게 추가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스테이지들이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아이템을 잘 모을 수 있게 말이죠

 

두번 째 컨셉은, 두 명이서 즐겨도 게임이 재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게임들은

 

2인 플레이시, 한 사람이 죽어야 다음 사람의 차례가 왔었죠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에서는 한 스테이지가 끝날 때마다

 

서로 번갈아 가면서 플레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같이 협동하거나

 

혹은 하이스코어로 경쟁할 수도 있죠

 

배틀모드도 추가되었는데,

 

1983년 아케이드 버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픽, 스테이지, 파워업, 아이템을 새롭게 바꾸는 작업은

 

R&D4 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팀원들이 매우 지쳤거든요

 

미야모토는 종종 밤새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디자이너들에게 매우 엄격하게 대했으며

 

정말 사소한 디테일이라도 가차없이 고치게 했습니다

 

설령 게임의 발매가 연기되는 한이 있어도 말이죠

 

"만약 게임이 조금이라도 더 재밌어질 수 만 있다면

 

"미야모토 씨는 게임을 수정하는 데 있어

 

단 한순간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디자이너인 에구치 카츠야는 말합니다

 

디렉터인 카즈야 타카하시는 그 당시 고생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개발은 중구난방에, 질질 끌기만 했었죠" 라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가장 고생한걸로 따지자자면 홀로 외롭게 작곡하던 콘도 코지를 이길 사람은 없을겁니다

 

2년 전, 콘도 코지는 비디오 게임 역사상 가징 상징적인 테마 중 하나로 손꼽히는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테마를 작곡했습니다

 

그는 이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의 테마를 홀로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정말 답이 안나오는 막막한 상황이었죠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의 테마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의 첫 테마를 작곡할때,

 

콘도는 단순히 게임플레이에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는 장르에 집중했습니다

 

콘도는 많은 타악기들로 작업했고,

 

그 결과 레게 사운드가 되었습니다

 

개발이 막바지에 이르렀을때, 그는 다양한 음악들을 작곡했고

 

미야모토와 테즈카에게 가장 좋은 곡을 뽑아달라고 요청합니다

 

1988년 봄이 되자,

 

중구난방이던 게임의 윤곽이 비로소 잡히기 시작합니다

 

미야모토가 역대급 마리오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는 결코 허세가 아니었습니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는 전작들의 뼈대는 그대로 유지한 채

 

더 많은 파워업, 더 많은 캐릭터, 그리고 더 많은 도전을 추가했죠

 

또한, 온갖 비밀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오토 스크롤링이나 월드맵 같은 새로운 요소들은

 

프랜차이즈에 있어 이제는 고정요소가 되었습니다

 

R&D4 팀이 이 게임을 만드는데는

 

2년이 넘는 기간이 소요되었고

 

개발비용도 많이 들어갔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80만 달러가 투입되었다고 하네요

 

당시에, 이 게임은 패미컴 게임 사상

 

가장 많은 인력이 집약된 게임이었습니다

 

비교해보자면, 초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는

 

320 킬로비트 정도였으나,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는 10배에 달하는 3 메가비트 였습니다

 

이윽고 1988년 가을이 되어 게임의 발매가 가까워지자

 

일본의 비디오 게임 판도가 바뀌게 됩니다

 

콘솔시장에 새롭게 도전장을 내민 NEC라는 회사가

 

1987년에 PC엔진을 선보이게 되는데,

 

색상과 그래픽면에서 앞서 있었고

 

패미컴의 판매량을 넘어서게 됩니다

 

또 다른 회사인 세가는, 16비트 게임기인

 

메가 드라이브의 출시를 앞두고 있었죠

 

닌텐도는 도태되지 않기 위해 새로운 콘솔 개발에 착수합니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는

 

단순한 속편 그 이상의 역할을 해내야만 했습니다

 

닌텐도가 새로운 16비트 게임기의 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벌어주고

 

닌텐도가 계속해서 비디오 게임계의 제왕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말이죠

 

(대충 손꼽아 기다리던 슈퍼마리오 3가 나왔다는 내용)

 

1988년 9월에, 이 게임의 영상 프리뷰가 공개됩니다

 

이제 정말 발매된다는게 실감되기 시작했죠

 

1988년 10월 23일,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가 일본에서 발매됩니다

 

엄청난 노력의 결실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매뉴얼 책자 안에는

 

R&D4 팀으로부터의 편지가 있었습니다

 

"슈퍼마리오 플레이어분들께 :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를 구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 많은 마리오 팬분들로부터의 요청에 보답하기 위해,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는 기존의 마리오 시리즈 보다도

 

"한층 더 재밌고 즐거운

 

"최신작 마리오 게임입니다

 

"수 많은 퍼즐과 함정들이

 

"귀하의 여정과 함께 할 것입니다

 

"마리오와 루이지의 모험에는 어떠한 수수께끼들이 도사리고 있을까요?

 

"그 답을 직접 찾아보며 게임을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마리오 직원 일동 드림"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는 초 대박을 쳤습니다

 

일본 유명 출판사인 패미통 잡지는,

 

40점 만점에 35점을 주며, 엄청나다는 평을 내렸습니다

 

마이컴 베이직 매거진 역시 "이 장르의 정점을 찍었다"며 극찬하였습니다

 

1988년 말이 되자, 게임공급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는 5달 연속으로

 

패미컴 게임 베스트셀러 1위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슈퍼마리오 열풍이 다시 한번 일본 전역을 휩쓸었죠

 

상품들이 가게마다 넘쳐났고

 

게임의 음악들은 콘도 코지가 작곡한 리믹스&어레인지된 버전을 수록하여

 

CD와 카세트로 발매되었습니다

 

심지어 만화영화도 나왔습니다

 

"아만다 애니메 시리즈 :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는

 

"세 요정"을 재구성한 작품이었는데,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등장시켰죠

 

일본 게이머들이 정신없이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를 즐기는 동안,

 

타국 게이머들은 그저 손가락만 빨수 밖에 없었습니다

 

1년이 넘는 오랜 기다림 끝에 이 게임은 미국땅을 밟게 됩니다

 

유럽 출시에는 거진 3년이 걸렸죠

 

비디오 게임 역사상 이토록 오래 기다려온 기대작은 없었습니다

 

이야기#2 : 대대적인 광고

 

닌텐도의 성공은 비단 일본에서만은 아니었습니다

 

북미 비디오 게임 시장 역시 장악하고 있었죠

 

1988년 한해에만, 닌텐도는 17억 달러의 수익을 냈고

 

경쟁사인 아타리와 세가를 가볍게 찍어 누르며

 

비디오 게임 시장의 80%를 차지했습니다

 

닌텐도가 NES를 전 세계에 선보인지 단 2년 만에

 

천 만대 이상 팔리는 기염을 토하게 되죠

 

"열풍 그 자체예요

 

"미국 어린이들은 이 게임기에 열광하죠

 

"8살에서 15살 사이의 자녀들 둔 가정이라면 NES는 사실상 필수입니다

 

"아이들 사이에선 NES가 없으면 간첩이예요"

 

...라고 릭 앙귈라 씨는 말합니다

 

이러한 닌텐도의 대박행진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가 세운 공이 정말 컸습니다

 

미국 닌텐도는 이 게임을

 

NES 세트에 포함시켰고,

 

이 게임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인기있는 게임이 되었죠

 

하지만, 팬들은 더 강렬한걸 원했습니다

 

일본에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가 발매된 해와 같은 해인 1988년,

 

미국 닌텐도는 북미판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2를 발매합니다

 

일본판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2와는 완전 다른 게임이었죠

 

일본에서 새롭게 발매되는 게임들을 리뷰하던

 

미국 닌텐도 제품분석 매니저인 하워드 필립씨는

 

일본판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2의 발매를 거부했습니다

 

겉보기에 1편과 거의 똑같았고

 

무엇보다도 게임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미야모토 씨 답지않게 이 살인적인 난이도의 게임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놀라웠죠"

 

...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일본판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2를 북미에 발매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결정이라고 판단,

 

닌텐도는 대신 다른 게임을 마리오 게임으로 바꾸기로 결정합니다

 

1987년에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으로 발매된

 

꿈공장 : 도키도키 패닉 역시 R&D4 팀에서 개발했는데,

 

미야모토 시게루 역시 이 게임 개발에 참여했고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의 레벨 디자이너인 타나베 켄스케는 이 게임의 디렉터였습니다

 

그래픽적으로, 이 게임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1보다 좋았고

 

육상게임이라는 틀에도 제법 잘 맞았기 때문에

 

닌텐도는 이 게임의 캐릭터를 마리오 일행의 캐릭터로 바꿉니다

 

그리고 제목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2로 바꿔서 북미와 유럽에 출시하게 되죠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사실을 몰랐고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2는 1988년 가장 핫한 크리스마스템이 됩니다

 

이 게임은 정말 구하기 힘들었지만

 

단지 게임이 인기가 있어서 구하기 힘든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해에는, 모든 전자산업에서 칩 부족 사태를 겪었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반도체와 칩 기술로 인해 생산업체들의 생산량에 빨간불이 켜졌죠

 

캠코더와 휴대전화가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통에

 

칩의 수요량은 역대급으로 높아졌고

 

칩의 가격 또한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1987년 까지만해도 개당 2달러였던 가격이 이제는 최대 12달러까지 뛰어버리는 통에

 

닌텐도는 큰 타격을 입고 맙니다

 

공급을 맞추기 위해, 닌텐도는 여러가지 게임의 공급을 중단하죠

 

그리고 닌텐도는 서드파티 게임을 포함한 모든 게임의 생산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사업자들과의 문제도 불거지게 됩니다

 

회사들은 처음 발주한 카트리지 수량 보다 더 적은 수량만 받게될 것이라 통보받죠

 

몇몇 매장들은 이점을 이용해,

 

게임의 가격을 개당 70달러까지 올리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비디오 게임 시장의 요구치보다 15% 낮게 공급이 이루어질 거라 예측했죠

 

한 리포터가 미국 닌텐도의 마케팅 부사장이었던 피터 메인씨에게

 

이런 공급 부족사태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냐고 묻자,

 

그는, "간절히 기도하는 수 밖에요" 라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그 즈음, 미국 닌텐도는 일본으로부터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의 카피본을 받아 분석에 들어갔고

 

이 게임이 대 히트할것을 직감했습니다

 

제품 분석 매니저인 하워드 필립씨가

 

리뷰를 위해 이 게임을 플레이 했을때, 그는 한 순간에 매료되고 말았죠

 

"처음 제가 이 게임을 봤을때

 

"그저 재미와 도전을 추구하는 일반적인 게임 그 이상의 무엇을 느꼈죠

 

"이 게임은 비디오 게임의 정수 그 자체였어요" 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수정을 가해야 했습니다

 

이 게임은 일본판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2 만큼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냥 쉽지만은 않았죠

 

일본판에서는, 파워업한 상태에서 마리오가 맞으면 작아집니다

 

북미판에서는, 동일한 상황에서 바로 작아지지 않죠

 

적들의 이름 또한 바뀌었습니다

 

특히, 쿠파의 자식들 말이죠

 

미국 닌텐도 현지화팀 소속인 데이브 브룩스는

 

열렬한 음악 팬이었고,

 

쿠파의 자식들의 이름을 유명한 락스타들에게서 따옵니다

 

그는, 이 흐트러진 머리의 쿠파의 자식을 보자마자

 

루드윅 폰 베토벤을 떠올렸습니다

 

고로, 이 녀석의 이름은 루드윅 폰 쿠파가 되었죠

 

웬디 O. 쿠파의 경우,

 

펑크 락커인 웬디 O. 윌리엄스에서 비롯됐죠

 

이기 쿠파의 경우는 누굴까요?

 

펑크 스타인 이기 팝입니다

 

로이 쿠파의 경우, 가수 로이 오비슨에서 따왔습니다

 

레미 쿠파의 경우는,

 

모터헤드의 레미에서 비롯되었죠

 

하지만 모든 녀석들의 이름을 뮤지션들에게서 따온 것은 아닙니다

 

모턴 쿠파 주니어는 똑똑하지만 허풍쟁이 기질이 있기 때문에

 

소위 저질 프로의 선구자로 불리는

 

토크쇼 진행자 모턴 다우니 주니어 로부터 그 이름을 따왔습니다

 

래리 쿠파는 어떨까요?

 

그냥 잘 어울려서 래리로 지어줬답니다

 

한편, 업계 내부자들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가

 

일본에서처럼 북미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해 했습니다

 

당시 미국 닌텐도는 곤경에 처한 상황이었죠

 

칩 부족 사태로 인해 충분한 게임을 생산할 수 없었거든요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칩 부족 사태가 1989년에 끝날것이라 예측했고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2 또한 발매된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 판매성적도 좋았죠

 

고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를 데려오기엔 시기상조로 보였죠

 

게다가, 닌텐도의 신형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보이도 있었는데

 

이 게임기는 1989년 여름에 발매될 예정이었습니다

 

고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같은 대작게임은

 

게임보이를 팀킬할 가능성이 있었죠

 

하지만, 마냥 앉아서 기다리느니

 

닌텐도는 이 게임을 1990년 제 1분기에 발매하기로 결정합니다

 

전통적으로, 매해 1분기에는 소프트웨어 판매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었거든요

 

1989년, 닌텐도는 게임의 티저와 더불어

 

2,500만 달러의 광고캠페인을 추진합니다

 

1989년 1월, 70만명의 닌텐도 파워 구독자들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의 첫번째 티저를 보게 됩니다

 

딱 한줄짜리 글이었지만요

 

4번째로 발행된 잡지에서,

 

아케이드 게임기인 플레이초이스-10을 광고하는 지면에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에 대해 언급되어 있습니다

 

5번째 잡지에서 닌텐도는 또 한번 정보를 흘리는데,

 

시카고에서 개최되는 여름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의

 

여행권 컨테스트를 소개하는 지면에서 였죠

 

독자들은 닌텐도에 이 게임에 대해 문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한 독자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를 발매할 것인지 묻기도 했는데

 

닌텐도가 답하길, 해당 게임은 플레이초이스-10용으로 나올것이라 했고

 

현재로써는 NES용으로 출시할 계획은 없다고 언급합니다

 

그런데, 뒤쪽의 Pak Watch 섹션에서는

 

닌텐도는 향후 발매예정 게임 목록에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3를 집어넣었죠

 

1989년 여름까지,

 

Electronic Gaming Monthly나 GamePro 같은 잡지들은

 

이 게임을 일본에서 수입하여

 

스크린샷과 함께 수 많은 프리뷰를 썼습니다

 

대부분의 북미 플레이어들은

 

이들을 통해 게임의 모습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죠

 

하지만, 7월에 소수의 사람들이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를 즐기게 됩니다

 

1989년 7월 15일, 닌텐도는 아케이드 게임기인

 

플레이초이스-10으로 이 게임을 출시했고,

 

미국 닌텐도의 어느 간부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당사가 만든 역대 최고의 게임입니다"

 

비록 플레이초이스-10은 NES에 비해

 

매우 적은 수만 보급되었지만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보고된 바에 의하면,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로 인해

 

플레이초이스-10의 수입이 3배로 뛰기에 이릅니다

 

한편, 네바다와 캘리포니아에서는

 

유니버셜 픽쳐스의 영화촬영이 한창이었고,

 

이 영화로 인해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는

 

역대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비디오 게임이 되었습니다

 

 

1989년,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회장인

 

톰 폴락은 난처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우주가족 젯슨 영화의 개봉을 홀리데이 시즌에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폴락은 이를 대체할 만한 가족영화를 선보여야만 했죠

 

그야말로 폭발적인 닌텐도 열풍을 지켜보던 그는,

 

비디오 게임을 이용해 영화를 만들면 대박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폴락은 닌텐도 마케팅 임원인 빌 화이트와 피터 메인과 만나

 

컬래버레이션에 관해 의논하게 되었고,

 

폴락이 낸 아이디어는

 

장애를 앓고 있는 소년이 핀볼챔피언이 되는 락 드라마 영화 "토미"를

 

애들용 버전으로 만들어보자 였죠

 

닌텐도로선 딱히 더 좋은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고

 

그들의 상품을 영화에서 사용토록 허가해주는 대신

 

닌텐도는 라이센스 비용과 더불어

 

영화대본과 게임화면에 대한 권한을 가져가게 됩니다

 

빌 화이트는 영화 제작과정을 감독하기 위해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우리가 우려하던 것은 어떻게 해야 게임 화면이

 

"극적으로 연출이 될까 였죠" ...라고 그가 말했습니다

 

영화의 제목은 "전자오락의 마법사" 였는데

 

캘리포니아에 가고 싶어 환장하는 꼬마 지미의 이야기죠

 

지미의 이복형인 코리는

 

지미를 보육원에서 빼내어 캘리포니아로 향하게 되고

 

가는 도중에 헤일리라는 이름의 소녀도 만납니다

 

코리와 헤일리는 지미가 비디오 게임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고

 

지미를 비디오 게임 대회에 참가 시킨뒤에

 

5만달러의 상금을 나누자고 합니다

 

그들은 가족들과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떠나게 되는데

 

현상금 사냥꾼이 그들을 추적하죠

 

이 영화에는 닌텐도 관련 요소들이 잔뜩 등장하는데,

 

게임, 닌텐도 파워 라인, 심지어 파워글러브도 등장합니다

 

전자오락의 마법사는 북미에서 1989년 12월 15일에 개봉됐고

 

비평가들은 이 영화를 혹평했습니다

 

로저 이버트는 이 영화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죠

 

"닌텐도와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위해 만들어진 어설프게 위장된 광고"

 

하지만, 영화를 본 아이들한테는 혹평같은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비디오 게임대회에 참가한 참가자들이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를 플레이 할 때였죠

 

(대충 관객들에게 슈퍼마리오 3를 선보이는 내용)

 

바로 이 순간이야말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신작 마리오 게임의 실제 플레이 화면을 처음으로 보게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비디오게임 시장에서의 닌텐도의 압도적인 독주와

 

대중문화에 끼치는 그들의 영향은 날로 커져만 갔고,

 

그 기세는 꺾일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1989년 한 해에만, 닌텐도는 소매판매로 총 27억 달러의 매출을 달성합니다

 

NES는 당연하다는 듯이 3년 연속 1위를 차지합니다

 

미국 가정의 22%가 NES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2천만대 이상이 팔렸습니다

 

1989년 초에 발매된 게임보이 역시

 

가게마다 매진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죠

 

정식 라이센스를 받은 200여개가 넘는 마리오 상품들이 쏟아져 나왔고

 

전세계 다양한 국가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매장들에서

 

닌텐도 상품들이 날개돋친듯 팔려나갔습니다

 

닌텐도 파워의 구독자 수는 1,800만명으로 늘어났죠

 

플레이어들에게 전화상으로 게임의 팁 등을 제공하는

 

닌텐도 파워 라인은 한 주에 14만 건 이상의 문의를 받았고요

 

닌텐도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에 대한 열광은 이내 정점을 찍게 되는데,

 

아이들은 이 게임의 발매일이 언제인지 조차 몰랐음에도

 

크리스마스 선물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를 원했고

 

간절한 기다림의 결실은 코 앞에 다가와 있었습니다

 

이야기#3 : 역대급 볼륨의 게임

 

1990년 1월, 닌텐도 파워 구독자들은

 

새로 발행된 잡지를 받게되는데

 

그 안에는, 그들이 기다려온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의 공식 프리뷰가 담겨있었습니다

 

게임 개발당시의 비하인드 씬을 포함해서 말이죠

 

닌텐도 파워에서 어떤 게임의 프리뷰를 담는다는 것은,

 

곧 그 게임의 발매가 머지 않았음을 뜻했죠

 

바로 다음 달인 2월,

 

북미 전역의 매장에서 소매가 49.95달러의 가격으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가 발매됩니다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 였죠

 

이틀만에 25만장이 팔렸고

 

가는곳마다 매진이었습니다

 

닌텐도는 그 수요를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매장에 들여오면 하루만에 동이났죠

 

"걸려오는 전화문의 내용중 십중팔구는 닌텐도 아니면 슈퍼마리오 브라더스3 였죠"

 

...라고 토이저러스 시카고점 직원이 언급했습니다

 

"언제 입고될지 조차 몰랐음에도,

 

"일단 들여왔다 하면 순식간에 품절됩니다"

 

겨우 게임을 구한 사람들은 게임을 해보자마자

 

역대급 게임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죠

 

"만약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가

 

게임이 아닌 영화로 나왔다면, 오스카상은 따 놓은 당상이었을 겁니다"

 

-커리어 뉴스, 폴 프랭클린

 

마리오! 마리오!

 

마리오! 마리오! 마리오! 마리오!

 

3월이 되자, 게임의 판매량이 70만장을 넘어서게 되고

 

미국 닌텐도는 2,500만 달러를 들여 광고캠페인을 시작합니다

 

광고가 TV전파를 탔고,

 

팝시클이나 나비스코같은 회사들과의 상호촉진 광고도 냈죠

 

NBC는 토요일 아침에 마리오 만화를 방영했는데,

 

제목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 어드벤쳐" 였습니다

 

맥도날드는 해피밀 세트 장난감을 출시합니다

 

그 동안, 경쟁회사들은 새 게임기를 출시하는데,

 

세가는 16비트 게임기인 세가 제네시스를,

 

일본에서 PC엔진으로 재미좀 본 NEC는

 

터보그래픽스-16을 출시하죠

 

하지만, 그 뿐이었습니다

 

아이들의 관심은 오로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였습니다

 

아이들은 어디까지 깼는지 서로 자랑하고,

 

워프피리와 파워업을 먹을 수 있는 비밀길을 서로 공유하기도 했죠

 

게임의 스케일은 너무나도 컸고 비밀로 가득 차 있었으며,

 

닌텐도는 이러한 점이 몇몇 플레이어들을 지레 겁먹게 할까봐 노심초사 였죠

 

이러한 이유로, 닌텐도 파워는 1990년 7월에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의 첫 완벽 공략집을 선보이는데,

 

모든 스테이지의 맵, 모든 적들과 파워업에 대한 정보,

 

게임속 모든 비밀을 담고 있었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 게임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이 게임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한 무리의 청년팬들은

 

게임을 PC로 이식해서 닌텐도에 보내기도 했죠

 

라이센스를 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닌텐도는 이에 감명받았지만, 끝내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존 카멕, 존 로메로, 톰 홀, 아드리안 카멕으로 구성된 이 청년팬들은 이에 낙담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들의 성과에 기뻐하며

 

다음해에 id소프트웨어라는 회사를 차리게 됩니다

 

울펜슈타인3D와 둠을 만든 회사죠

 

1991년까지, 닌텐도는 북미에서 이 게임을 800만장 이상 판매합니다

 

4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뒀죠

 

만약 이 게임이 장난감 회사였다면

 

1990년 미국 탑 10 안에 드는 장난감 회사가 되었을 겁니다

 

당시 이 게임은 역사상 유례없는 스텐드얼론 비디오 게임이었습니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가 나오기전만 하더라도

 

비평가들은 닌텐도가 그저 잠깐 지나가는 유행일거라 생각했습니다

 

일렉트로닉 아츠사의 사장인 트립 호킨슨씨는

 

NES를 양배추 인형에 빗대어 말했습니다

 

"이건(NES) 그저 장난감이고, 장난감은 곧 유행이죠"

 

하지만, 슈퍼마리오 브라더스3가 발매되자 이러한 말은 쏙 들어갔죠

 

닌텐도는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닌텐도의 1990년 수익은 340억 달러에 육박했고,

 

88%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습니다

 

1991년에는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 토요타를 능가면서,

 

닌텐도는 직원 당 1,500만 달러의 수입을 거둬들입니다

 

하지만, 손실도 있었죠

 

연방 거래 위원회는 가격 담합과 같은 독점 금지법 위반 혐의로 닌텐도를 조사했고

 

닌텐도는 이를 부인했지만,

 

고객들에게 최대 2,500만 달러 상당의 리베이트를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게됩니다

 

리베이트는 5달러 상당의 쿠폰형식으로 지급되었고,

 

고객들은 이 쿠폰을 오로지 닌텐도 게임을 사는데 쓸 수 있었죠

 

결과적으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는

 

전 세계적으로 1,7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타 기종으로 재발매된 버전과 합하면

 

3,000만장 이상 팔린것으로 추산되죠

 

하지만, 판매량과 금액적인 지표도 중요하지만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는

 

비록 가정용 비디오 게임이라고 할 지라도 웅장한 모험의 장이 펼쳐질 수 있으며,

 

가정용 게임이 아케이드 게임을 능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슈퍼스타가 되었습니다

 

폴 매카트니,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유명인사들이

 

그를 보러 일본까지 날아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성공은, 향후 발매될 대작 게임들 또한 그가 제작 또는 감독할 수 있음을 시사했고,

 

그의 다음 마리오 게임인 슈퍼 마리오 월드는,

 

닌텐도의 16비트 게임기인 슈퍼패미컴의 런칭타이틀이 되었죠

 

게임기가 한층 더 발전함에 따라,

 

미야모토는 드디어 마리오를 공룡위에 태울 수 있게 됩니다

 

다른 회사들은 마리오의 성공을 본보기로 삼았습니다

 

세가는, 주력 프랜차이즈가 가진 위력을 실감하고

 

세가만의 고유 마스코트인 소닉을 탄생시킵니다

 

소닉은 1991년에 메가드라이브 및 제네시스로 데뷔하였는데,

 

소닉의 등장으로 인해 90년대 콘솔전쟁의 서막이 열리게 됩니다

 

닌텐도가 슈퍼패미컴을 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에 대한 대중들의 사랑은 식을줄을 몰랐고,

 

NES가 단종되던 해인 1995년까지 NES 게임 탑 20 순위안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과거 NES와 함께했던 어린시절을 떠올릴때,

 

장담하건데, 분명 여러분들중 거의 대부분은

 

그 시절 신세계와도 같았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혁신성으로 점철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를 떠올릴 것입니다

 

번역 : 수렵장인

 

 

 

 

(upbeat guitar music)

 

- [Narrator] It was February 1990.

 

Nintendo of America was about to release

 

one of their biggest games of all time,

 

Super Mario Bros. 3, and the hype was real.

 

Super Mario Bros. 3 came out a year and a half earlier

 

in Japan, and even in a time before internet,

 

North American gamers knew all about it.

 

Throughout 1989, magazines printed previews and teasers.

 

A major Hollywood movie showed off the game.

 

Some stores even sold import

 

or bootleg versions of the game.

 

But Super Mario Bros. 3 was more

 

than just another game in the series.

 

It proved that Nintendo and Super Mario Bros.

 

were not a fad.

 

And even with competition from other companies,

 

Nintendo was still the king of video games.

 

This is the story of how one game captured the hearts

 

and minds of an entire generation of players.

 

This is the Story of Super Mario Bros. 3.

 

(video game beeps) (upbeat synth music)

 

By the summer of 1986, Mario fever had officially hit Japan.

 

(lively guitar music)

 

(kids speaking in foreign language)

 

Nintendo's Super Mario Bros. for the Famicom

 

was a smash hit, selling more than three million copies.

 

The country's bestselling book was

 

"Super Mario Bros.: The Complete Strategy Guide,"

 

which contained tips and tricks on how to beat the game.

 

The Mario Bros. theme song was given lyrics

 

and released as a single, "Go Go Mario."

 

(upbeat synth music)

 

- [Narrator] Super Mario Bros. even shifted

 

Japan's public perception on video games.

 

- [Man] "Before Super Mario Bros. came out,

 

"even the parliament had taken up the issue

 

"of the influence of video games on children,

 

"and newspaper articles were mostly negative.

 

"But Mario's bright atmosphere cleared away

 

"that prejudice against the Famicom."

 

Hiroshi Imanishi, Nintendo.

 

(contemplative guitar music)

 

- [Narrator] The game caused a sales explosion

 

for the Famicom system.

 

By June of 1986, Nintendo had sold

 

more than 6.5 million units.

 

One out of every five households in Japan had a Famicom.

 

And with Super Mario Bros. enormous success,

 

a sequel was never in doubt.

 

Super Mario Bros. 2 was released on June 3rd, 1986,

 

less than a year after the original game's debut.

 

Nintendo released the game on the Famicom Disk System,

 

a new add-on for the Famicom

 

that would play games using proprietary disks.

 

They were cheaper to make than standard cartridges

 

and could hold more data.

 

Nintendo hoped that all their future big releases

 

would be dedicated to the Disk System.

 

A sequel to the most popular Famicom game

 

would help drive sales.

 

Super Mario Bros. 2 would become the bestselling game

 

on the Disk System, selling more than two million units.

 

But players were hungry for more.

 

The game felt more like an expansion pack

 

than a true sequel.

 

Visually, Super Mario Bros. and Super Mario Bros. 2

 

were almost identical.

 

It was also an extremely difficult game,

 

which was a turnoff for new players.

 

Nintendo even advertised it as such,

 

slapping a "For Super Players" label

 

on the game's packaging.

 

And players weren't the only ones who wanted a true sequel.

 

Research & Development 4, the team

 

behind the first two Super Mario Bros. games,

 

were ready to provide the Famicom

 

with the ultimate Mario game, so Nintendo got to work.

 

A team of over 10 people at R&D4 would be responsible

 

for making Super Mario Bros. 3.

 

Their leader was Shigeru Miyamoto.

 

If Mario was Nintendo's Mickey Mouse,

 

Shigeru Miyamoto was Nintendo's Walt Disney.

 

He created Mario back in 1981 and, since then,

 

had seen his character become the face of the company.

 

Miyamoto took a step back

 

during the development of Super Mario Bros. 2.

 

He had recently become a father

 

and was involved in too many projects, but now,

 

he was ready to throw himself completely into a sequel.

 

He would oversee almost every aspect

 

of the creation of Super Mario Bros. 3.

 

Miyamoto's right-hand man, Takashi Tezuka,

 

was named the game's director.

 

Tezuka joined Nintendo two years earlier at the age of 24,

 

and was instrumental in the design and development

 

of Super Mario Bros. and The Legend of Zelda.

 

Following that, Tezuka was given

 

his first director job on Super Mario Bros. 2.

 

His work on that game, while facing a tight deadline,

 

proved he was more than capable of doing the job.

 

But Super Mario Bros. 3 would prove to be a challenge.

 

Toshihiko Nakago was the main programmer.

 

He began his career at Nintendo in 1983

 

by porting arcade games to the Famicom.

 

Nakago proved invaluable when he helped Miyamoto and Tezuka

 

bring their ideas to life by programming

 

The Legend of Zelda and Super Mario Bros.

 

Working alone as the composer was Koji Kondo.

 

Before Kondo arrived at Nintendo in 1984,

 

music and sound effects were handled by the programmers.

 

Kondo was one of the first members

 

of Nintendo's dedicated music staff.

 

Along with veterans, Research and Development 4

 

had a group of young designers

 

and programmers eager to prove their value.

 

Among them was Kensuke Tanabe, a new hire

 

who not only had to design levels

 

for Super Mario Bros. 3, but was also directing

 

his own game, Yume Kojo: Doki Doki Panic,

 

Kazuaki Morita, a programming whiz

 

who helped program Super Mario Bros. at the age of 19,

 

Katsuya Eguchi, a graphic artist

 

whose talent caught the eye of Miyamoto.

 

He was brought on as a level designer.

 

And Hideki Konno, a designer who had dreamed of working

 

at Nintendo ever since he started playing Famicom games.

 

With his team assembled, Miyamoto could begin

 

production on his ultimate Mario game.

 

But making this new game would require a lot of power.

 

Luckily, it was available.

 

Although Super Mario Bros. 2

 

was released on the Famicom Disk System,

 

new advancements in cartridge technology

 

quickly made the Disk System obsolete.

 

Chip prices were coming down,

 

and storage capabilities were increasing.

 

Internally, Nintendo developed MMC chips,

 

multi-memory controllers,

 

which greatly expanded the Famicom's capabilities.

 

Developers made games never before thought possible.

 

Miyamoto credited MMC chips as the reason

 

the Famicom lasted so long on the market.

 

Super Mario Bros. 3 utilized the MMC3 chip,

 

which allowed better graphics, screen splitting,

 

diagonal scrolling, and more memory.

 

(video game beeps) (upbeat synth music)

 

With this new power, Tezuka was ready to try something new.

 

- [Man] "We made Super Mario Bros. 2

 

"by changing the original game's difficulty

 

"and stage design, but we couldn't do that again,

 

"so I wanted to change everything."

 

Takashi Tezuka.

 

(video game beeps)

 

- [Narrator] R&D4's first new idea

 

was to change the perspective.

 

They experimented with making a Mario game

 

using an isometric view, but Miyamoto wasn't a fan.

 

"With a diagonal view from slightly overhead,

 

"you lost your sense of distance to the ground.

 

"So I told him that development

 

"would be difficult," he said.

 

R&D4 scrapped the idea

 

and went back to the standard side view.

 

(video game beeps) (upbeat synth music)

 

Nintendo referred to Super Mario games as athletic games,

 

games where players could move freely,

 

run fast, and jump high.

 

"It's a type of game that is easily approachable

 

"for younger, inexperienced players,

 

"but can also be played by experienced hardcores

 

"without getting tired of it," said Miyamoto.

 

(mellow guitar music)

 

This game philosophy reemerged.

 

R&D4 began brainstorming new ways

 

to make Super Mario feel even more athletic.

 

They could let Mario slide down hills,

 

pick up and kick objects, and even fly through the air.

 

Graphically, Mario could not stay the same.

 

The first two Super Mario games looked too similar,

 

so R&D4 gave the Mario universe a complete makeover.

 

Nothing from the first two games carried over.

 

Every single character, enemy, item,

 

and environment was brand-new.

 

There was a cutesy aesthetic to the graphics,

 

thanks to director Takashi Tezuka.

 

In the previous Mario game,

 

he added eyeballs to many objects.

 

He did the same thing in Super Mario Bros. 3.

 

"He wanted to add eyes to just about everything,"

 

said designer Katsuya Eguchi.

 

Colors were bright and varied.

 

Trees and bushes danced on screen.

 

The visuals had a theatrical element.

 

A curtain rose to introduce the game.

 

Hanging platforms and blocks bolted to the background

 

resembled set pieces.

 

Mario finished each level by exiting the stage.

 

R&D4 put these new visuals in an all new world as well.

 

Now, Mario had eight new areas to explore,

 

each with their own visual theme:

 

Grass Land, Desert Hills,

 

Ocean Side, Big Island,

 

The Sky, Iced Land,

 

Pipe Maze, The Castle of Koopa.

 

The designers cranked out levels.

 

Hideki Konno didn't remember the experience fondly.

 

"We laid tracing paper over graph paper

 

"and painstakingly drew levels every day," he recalled.

 

Once finished, the designers brought their levels

 

to the Map Room, a long narrow room where programmers

 

took the sheets of graph paper and programmed map data.

 

It was a long process.

 

Designers had to wait a whole day

 

before seeing their creation on screen.

 

And even then, there were plenty of bugs to work out.

 

To connect all the levels,

 

the development team added an overworld map.

 

Levels were no longer played in a linear order.

 

Now, players could choose their own path

 

to the end of each area.

 

(video game beeps)

 

(mellow guitar music)

 

How did Research & Development 4

 

come up with these new worlds?

 

They may have gotten inspiration

 

from the most magical place on Earth.

 

In 1987, Shigeru Miyamoto and other members

 

of the Research & Development 4 team needed inspiration,

 

so they took a trip to the United States.

 

(engines rumbling) (vehicles honking)

 

They visited several places, including New York City,

 

San Francisco, and Disney World in Orlando, Florida.

 

(fireworks crackling)

 

Disney World had several unique areas,

 

and it felt like a fairytale land.

 

Super Mario Bros. 3 was similar,

 

with its eight different colorful worlds.

 

Cinderella's Castle sat in the center of the park,

 

connecting everything together.

 

(kid screams)

 

It was similar in Super Mario Bros. 3.

 

The white castle in each world

 

helped guide the player along,

 

and was the key to getting to the next area.

 

No one at Nintendo has ever confirmed

 

that Super Mario Bros. 3 was inspired by Disney World,

 

but the similarities are interesting.

 

(video game beeps) (upbeat synth music)

 

New graphics and levels weren't

 

the only addition to Super Mario Bros. 3.

 

R&D4 added new power-ups as well.

 

(mellow guitar music)

 

One of Miyamoto's ideas was to have Mario ride a dinosaur.

 

He had wanted to do it since the original Super Mario Bros.

 

But technical limitations prevented it from happening.

 

To compromise, director Takashi Tezuka pitched the idea

 

of Mario transforming into animals rather than riding them.

 

It was a good idea.

 

Mario could get different power-ups and suits

 

that would transform him into animals

 

with their own powers and abilities.

 

The super leaf turned Mario into a raccoon

 

and gave him the power to hit enemies with his tail

 

and fly completely over a level.

 

But the ability to fly was initially too powerful.

 

Head programmer Toshihiko Nakago voiced his concerns.

 

"If we had gone with that, all of the obstacles

 

"and the objects on the ground that we managed to create

 

"would have been wasted," he said.

 

But Tezuka insisted they come up with a way to make it work.

 

To compromise, the programmers made some restrictions.

 

Mario could only fly if he took off from a runway,

 

and even then, the flight was temporary.

 

The frog suit let Mario jump higher and swim faster,

 

but he slowed down when using the suit on land.

 

The hammer suit gave Mario

 

the ability to throw hammer projectiles

 

and protect himself with a fireproof shell.

 

There was also the Tanooki suit,

 

based on a mythical Japanese creature.

 

It was identical to the raccoon suit,

 

except it also let Mario transform into a statue,

 

granting temporary invincibility.

 

Miyamoto loved the Tanooki suit.

 

"Even though I knew it wouldn't make sense

 

"to non-Japanese players, I was so excited about it

 

"that I left it in," he said.

 

At one point, someone pitched the idea

 

of Mario turning into a centaur.

 

It got rejected.

 

With new power-ups came a cast of enemies

 

for Mario to defeat.

 

The usual suspects were still around:

 

Goombas, Koopa Troopas, Hammer Bros.

 

But there were a ton of new faces as well:

 

Boom Booms, Spikes, Big Bertha.

 

A few enemies were based

 

on staff members' personal experiences.

 

The Chain Chomps came from Miyamoto, who had

 

a bad experience with a neighbor's dog as a child.

 

Boos were supposedly based

 

on director Takashi Tezuka's wife,

 

who was normally a shy woman

 

but got angry when he worked late.

 

The seven Koopaling bosses were modeled

 

after the young designers at Research & Development 4.

 

It was Miyamoto's way of rewarding their hard work.

 

Along with new power-ups and enemies, new items were added

 

that Mario could use throughout his adventure.

 

The idea was to give less experienced players

 

more opportunities to get past tough levels.

 

The music box put Hammer Bros. enemies on the map screen

 

to sleep, allowing Mario to sneak past.

 

A warp whistle, taken from the Legend of Zelda series,

 

let Mario skip ahead to new worlds.

 

It also served as a way to get around

 

not having a battery save on the cartridge.

 

A hammer broke obstacles and revealed

 

shortcuts and secrets on the map.

 

Jugem's cloud, also known as Lakitu's cloud,

 

allowed players to skip a level.

 

The P-Wing allowed Mario to fly completely through a level,

 

a holdover from the original raccoon suit idea.

 

Through the flurry of changes, Miyamoto had to ensure

 

two major concepts were present in Super Mario Bros. 3.

 

The first was that players of all skill levels

 

could enjoy the game.

 

New players could find plenty of one-ups, coins,

 

and power-ups scattered throughout the early levels.

 

Mini-games and Toad Houses were placed on the overworld map,

 

giving players even more chances to earn items.

 

As the levels got harder, players would be well-stocked.

 

The second major concept was making a game

 

that was fun for two people to play.

 

In the original Super Mario Bros.,

 

players would take turns when the other died.

 

In Super Mario Bros. 3, players got a turn

 

after each level was completed,

 

and could either work together

 

or compete for the high score.

 

A battle mode was added as well,

 

based on the 1983 Mario Bros. arcade game.

 

Implementing all of the new moves,

 

graphics, levels, power-ups, and items

 

took a toll on the entire staff at R&D4.

 

They were exhausted.

 

(reflective guitar music)

 

Miyamoto would sometimes work through the night.

 

He kept a close eye on his designers

 

and wasn't afraid to make them fix the smallest detail,

 

even if it meant delaying the game.

 

"If it'll make the game even a little bit better,

 

"Miyamoto-san's always been unhesitant

 

"about making changes," said designer Katsuya Eguchi.

 

Director Takashi Tezuka recalled the struggle.

 

"It wouldn't come together well and dragged on," he said.

 

Perhaps no one struggled more

 

than the lone composer, Koji Kondo.

 

(upbeat synth music)

 

Two years earlier, he composed

 

one of the most iconic jingles in video game history,

 

the Super Mario Bros. theme.

 

Now he had to make the theme for Super Mario Bros. 3.

 

It was a tough act to follow.

 

"I couldn't figure out how to change it

 

"from the original Super Mario Bros.," he said.

 

When he made the first Super Mario Bros. theme,

 

Kondo simply made music that went along with the gameplay.

 

This time around, he focused on genre.

 

Kondo worked in lots of percussion,

 

resulting in a reggae sound.

 

By the end of development, he had composed multiple songs

 

and had Miyamoto and Tezuka help him pick the best ones.

 

By the spring of 1988, the game

 

was finally starting to come together.

 

(mellow reggae music)

 

Miyamoto was not bluffing when he said

 

he wanted to make the ultimate Mario game.

 

Super Mario Bros. 3 took what was great

 

about the previous installments and added more moves,

 

more power-ups, more characters, and more challenges.

 

It was also chock-full of secrets.

 

Many of the new features, such as auto-scrolling

 

and the overworld map, became staples in the franchise.

 

It took Research & Development 4

 

more than two years to make Super Mario Bros. 3.

 

It was also expensive,

 

reportedly costing $800,000 to develop.

 

At the time, the game was the biggest

 

and most labor-intensive Famicom title Nintendo ever made.

 

For comparison, the original Super Mario Bros.

 

took up around 320 kilobits of memory.

 

Super Mario Bros. 3. was 10 times larger, at three megabits.

 

(contemplative guitar music)

 

When the game was finally ready

 

to be released in the fall of 1988,

 

the video-game landscape in Japan had changed.

 

A new contender in the console market, the PC Engine,

 

was introduced a year prior by NEC

 

and boasted more colors and better graphics.

 

It was outselling Nintendo's Famicom.

 

Another company, Sega, was getting ready to introduce

 

its own new console, the 16-bit Mega Drive.

 

All of a sudden, Nintendo had to play catch-up

 

and begin developing a new console of their own.

 

Miyamoto's ultimate Mario game

 

had to be more than just a sequel.

 

It had to buy Nintendo time to develop

 

their new 16-bit machine, and prove to the world

 

that they were still the king of video games.

 

(dramatic synth music)

 

(announcer speaks in foreign language)

 

Video previews of the game debuted in September of 1988.

 

Players wouldn't have to wait long to try it out themselves.

 

(upbeat guitar music)

 

On October 23rd, 1988,

 

Super Mario Bros. 3 was released in Japan.

 

It was clear that the game was a labor of love.

 

Included inside the manual was

 

a note from Research & Development 4.

 

- [Man] "To Super Mario players, thank you

 

"for purchasing Super Mario Bros. 3.

 

"In response to the requests of so many Mario fans,

 

"Super Mario Bros. 3 is the newest game

 

"in the series that we've created to be

 

"so much more fun than anything before it.

 

"There are many puzzles and traps

 

"along your way through this journey.

 

"What sorts of wonders are waiting for Mario and Luigi?

 

"Enjoy finding out the answer.

 

"Yours faithfully, the Mario Staff."

 

- [Narrator] Super Mario Bros. 3 was an enormous success.

 

Famitsu magazine, a popular publication in Japan,

 

gave the game a score of 35 out of 40 and called it amazing.

 

Micom BASIC Magazine praised the game as well,

 

calling it "the culmination of the genre."

 

By the end of 1988, there was a supply shortage of the game.

 

For five months straight, Super Mario Bros. 3 was

 

the number-one selling Famicom game in the country.

 

Super Mario mania once again swept over Japan.

 

Merchandise flooded stores.

 

The game's soundtrack was released on CD

 

and cassette, which featured remixes

 

and arranged versions of Koji Kondo's compositions.

 

There was even a cartoon.

 

The "Amada Anime Series: Super Mario Bros."

 

was a retelling of three fairytales,

 

featuring characters from Super Mario Bros. 3.

 

While Japanese gamers enjoyed

 

everything Super Mario Bros. 3,

 

the rest of the world waited.

 

(contemplative guitar music)

 

It would take more than a year

 

for the game to reach North America.

 

Europe had to wait almost three years.

 

All that waiting led to the most anticipation

 

for a video game ever.

 

(reflective guitar music)

 

Nintendo wasn't only succeeding in Japan.

 

They were in control

 

of the North American video-game market as well.

 

In 1988 alone, Nintendo raked in $1.7 billion

 

in revenue and had a whopping 80% share

 

of the video-game market, dominating rivals Atari and Sega.

 

In just over two years since launching

 

the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 nationwide,

 

they had sold more than 10 million consoles.

 

- [Man] "It's a mania.

 

"The kids of America are saying, this is great.

 

"We've got to have one.

 

"For boys in this country between the ages of eight and 15,

 

"not having a Nintendo is like not having a baseball bat."

 

Rick Anguilla, Toy and Business World.

 

- [Narrator] Nintendo's success was in large part thanks

 

to the popularity of Super Mario Bros.

 

Nintendo of America packed the game

 

in their Control Deck Set.

 

It quickly became their most popular title.

 

Fans were eager for more.

 

In October of 1988, the same month

 

Super Mario Bros. 3 launched in Japan,

 

Nintendo of America released Super Mario Bros. 2,

 

only it wasn't the same game as the Japanese version.

 

Nintendo of America's product analysis manager,

 

Howard Phillips, who reviewed new games from Japan,

 

had famously rejected

 

the Japanese version of Super Mario Bros. 2.

 

The game looked exactly like the first,

 

and, more importantly, it was too difficult.

 

"I put down my controller, astonished that Mr. Miyamoto

 

"had chosen to design such a painful game," he said.

 

Releasing the Japanese Super Mario Bros. 2 in North America

 

would not be a wise marketing decision, so instead,

 

Nintendo took another title and made it a Mario game.

 

(upbeat guitar music)

 

Yume Kojo: Doki Doki Panic, released in 1987

 

for the Famicom Disk System, was also developed

 

by Research and Development 4.

 

Shigeru Miyamoto had worked on the game,

 

and Mario 3 level designer Kensuke Tanabe was the director.

 

Graphically, it looked better than Super Mario Bros.,

 

and it fit the mold of an athletic game,

 

so Nintendo swapped out the characters

 

of Yume Kojo: Doki Doki Panic with Mario and friends

 

and released it as Super Mario Bros. 2

 

in North America and Europe.

 

Players were none the wiser, and Super Mario Bros. 2

 

became one of the hottest Christmas items

 

of the 1988 holiday season.

 

It sold out quickly, but popularity wasn't the only reason

 

the game was hard to find in stores.

 

(reflective guitar music)

 

That year, the entire electronics industry

 

suffered a chip shortage.

 

A new generation of semiconductor and chip technology

 

caused manufacturers to split their production capacity.

 

And demand was higher than ever, with camcorders

 

and portable telephones selling like hotcakes.

 

Prices skyrocketed.

 

Chips that were $2 in 1987, now cost $10 to $12 each.

 

Nintendo was hit hard.

 

To free up supply, they discontinued a dozen games.

 

And because Nintendo controlled

 

all manufacturing, including third-party games,

 

it caused tension with their licensees.

 

Companies were notified that they would be getting

 

fewer cartridges than initially ordered.

 

Some stores took advantage,

 

increasing game prices to $70 each.

 

Analysts estimated that video-game supply

 

would be up to 15% less than market demand.

 

When a reporter asked Peter Main,

 

Nintendo of America's Vice President of Marketing,

 

what they were doing about the shortage,

 

he replied, "You mean, besides hoping and praying?"

 

In the meantime, Nintendo of America had received

 

a copy of Super Mario Bros. 3 from Japan for analysis.

 

Internally, the company knew the game would be huge.

 

When product analysis manager Howard Phillips

 

played the game for review, he was blown away.

 

- [Man] "For me, when I saw it,

 

"I thought this is not just another game,

 

"and it's not just a fun and challenging game.

 

"It was truly a quintessential video game," Howard Phillips.

 

- [Narrator] However, a few changes needed to be made.

 

The game wasn't as hard as the Japanese Super Mario Bros. 2,

 

but it still proved to be a challenge.

 

In the Japanese version, when Mario got hit

 

while holding a power-up, he shrunk.

 

In the North American version,

 

Mario would stay big when hit.

 

The names of enemies had to be changed

 

as well, most notably the Koopalings.

 

Dayv Brooks, a localizer at Nintendo of America

 

and an avid music fan, gave the Koopalings

 

their names based on famous rock stars.

 

When he set eyes on a Koopaling with wild hair,

 

he immediately thought of Ludwig von Beethoven.

 

Thus, Ludwig von Koopa.

 

Wendy O. Koopa was inspired

 

by punk rocker Wendy O. Williams.

 

Iggy Koopa?

 

Punk star Iggy Pop.

 

Bespeckled Roy Koopa got his name from Roy Orbison.

 

Lemmy Koopa was inspired

 

by the legendary Lemmy from Motorhead.

 

But not all the Koopalings were based on musicians.

 

Morton Koopa Jr. struck Brooks as a wise guy,

 

a big talker, so he named the character

 

after the talk-show host Morton Downey Jr.,

 

a so-called trash TV pioneer.

 

As for Larry Koopa?

 

That name just seemed like a good fit.

 

Meanwhile, industry insiders wondered,

 

when would Super Mario Bros. 3,

 

the best selling game in Japan, come to North America?

 

(reflective guitar music)

 

Nintendo of America was in a bind.

 

With a chip shortage, they couldn't even make

 

enough games to meet demand.

 

But experts predicted the shortage would end in 1989.

 

Super Mario Bros. 2 had just been released

 

and was selling well.

 

It would be premature to bring over Super Mario Bros. 3.

 

There was also the Game Boy, Nintendo's new handheld system.

 

The plan was to release the system in the summer of 1989.

 

A game like Super Mario Bros. 3

 

might overshadow the release of the Game Boy.

 

Rather than simply wait around, Nintendo took advantage.

 

They planned to release the game

 

in the first quarter of 1990.

 

Historically, the first quarter of the year

 

had strong software sales.

 

They would spend 1989 teasing the game

 

and building a $25 million advertising campaign.

 

In January of 1989, 700,000 Nintendo Power subscribers

 

saw the first tease of Super Mario Bros. 3.

 

(upbeat guitar music)

 

And it was merely a sentence.

 

In issue number four, an advertisement

 

for the PlayChoice-10, an arcade cabinet

 

that featured select Nintendo titles,

 

mentioned that Super Mario Bros. 3 was on the way.

 

Nintendo teased it again in issue number five,

 

when they talked about a contest to win a trip

 

to the Summer Consumer Electronics Show in Chicago.

 

Players wrote in to Nintendo, asking about the game.

 

In issue number six of Nintendo Power, a reader asked

 

if Nintendo would ever release Super Mario Bros. 3.

 

The reply confirmed it was coming to PlayChoice-10,

 

but that "there are no immediate plans

 

"to release it for use with the NES."

 

But in the Pak Watch section in the back,

 

where Nintendo teased future releases,

 

Super Mario Bros. 3 was listed.

 

By the summer of 1989,

 

magazines like Electronic Gaming Monthly and GamePro

 

imported the game from Japan and wrote up

 

extensive previews with screenshots.

 

For many North American players,

 

this was their first look at the game.

 

But by July, a few people were playing Super Mario Bros. 3.

 

On July 15th, 1989, Nintendo released the game

 

for PlayChoice-10 arcade machines.

 

A Nintendo of America executive called it

 

"the best we've ever produced for the system."

 

Although there were far fewer PlayChoice-10s

 

than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s,

 

word seemed to spread quickly.

 

Operators reported earnings of PlayChoice-10 cabinets

 

with Super Mario Bros. 3 had tripled.

 

Meanwhile, in Nevada and California,

 

Universal Pictures was shooting a film

 

that would make Super Mario Bros. 3

 

the most anticipated video game of all time.

 

(mellow jazz music)

 

In 1989, President of Universal Studios,

 

Tom Pollock, was in a pickle.

 

Their Jetsons movie wouldn't be ready

 

in time for the holiday season.

 

Pollock had to come up

 

with an alternative family-friendly movie.

 

Throughout the year, he had witnessed

 

the popularity explosion of Nintendo

 

and thought a movie about video games would be a hit.

 

So Pollock met with Nintendo marketing executives Bill White

 

and Peter Main about a collaboration.

 

His idea was a kids version of the movie "Tommy,"

 

a rock drama film about a disabled boy

 

becoming a pinball champion.

 

Nintendo couldn't have bought a better ad.

 

In exchange for using their products in the movie,

 

Nintendo received a licensing fee

 

and approval over the script and game footage.

 

Bill White frequented the film set to oversee production.

 

"All we were worried about was just making sure

 

"that the game footage was spectacular," he said.

 

The movie was called "The Wizard."

 

It told the story of Jimmy, a quiet boy

 

who is obsessed with getting to California.

 

His half-brother, Corey, breaks him

 

out of a mental institution to get him there.

 

Along the way, they meet a girl named Haley.

 

Corey and Haley soon discover that Jimmy

 

is incredibly good at video games.

 

They decide to enter Jimmy

 

into the Video Armageddon tournament at Universal Studios,

 

and split the cash prize of $50,000.

 

They set out for Los Angeles, with their family

 

and a bounty hunter at their heels.

 

The movie was filled with Nintendo products including games,

 

the Nintendo Power Line, and even the Power Glove.

 

"The Wizard" was released on December 15th, 1989

 

in North America.

 

It was panned by critics.

 

Roger Ebert called it "a thinly disguised commercial

 

"for Nintendo video games and the Universal studio tour."

 

But that didn't matter to any kid who watched the movie.

 

The biggest draw was near the end of the film,

 

when the contestants in the Video Armageddon tournament

 

played Super Mario Bros. 3.

 

(audience cheers) - So I give you,

 

Super Mario Bros. 3!

 

(audience cheers) (video game beeps)

 

(upbeat synth music)

 

- [Narrator] For the majority of viewers,

 

this was the first time they saw

 

actual gameplay footage of the latest Mario sequel.

 

(mellow guitar music)

 

Nintendo's dominance in the video-game market

 

and its establishment in pop culture continued to grow,

 

and there were no signs of slowing down.

 

In 1989 alone, Nintendo grossed

 

$2.7 billion in retail sales.

 

The NES was, once again,

 

the number-one toy for the third year in a row.

 

The console was in 22% of US households,

 

with 20 million units sold.

 

The Game Boy, Nintendo's new handheld system

 

released earlier that year, was selling out in stores.

 

Merchandising exploded

 

with more than 200 licensed Super Mario products.

 

World of Nintendo departments

 

popped up in stores around the country,

 

dedicated to selling Nintendo products.

 

Nintendo Power magazine grew to 1.8 million subscribers.

 

The Nintendo Power Line, where players could call in

 

for game tips, received 140,000 calls a week.

 

The excitement around Nintendo

 

and Super Mario Bros. 3 reached a boiling point.

 

Children asked for the game for Christmas

 

despite not knowing when it would be released.

 

They didn't have to wait long.

 

(mellow reggae music)

 

In January of 1990, Nintendo Power subscribers

 

received a brand-new issue.

 

Inside was something they'd been waiting for,

 

an official preview of Super Mario Bros. 3

 

along with a behind-the-scenes look

 

at the making of the game.

 

History had shown that a preview of a game in Nintendo Power

 

meant the actual release was not far behind.

 

The very next month, in February,

 

Super Mario Bros. 3 popped up in stores

 

across North America at a retail price of $49.95.

 

There was a frenzy.

 

Within two days, 250,000 units were gone,

 

sold out everywhere.

 

Nintendo couldn't make the game fast enough.

 

Stores sold out within a day.

 

"Every other call we get is about Nintendo

 

"and Super Mario Bros. 3,"

 

said one Toys "R" Us employee in Chicago.

 

"We never know when we'll get it,

 

"but we'll sell out as soon as it gets here."

 

But for anyone that managed to find a copy, it was easily

 

one of the greatest games Nintendo had ever released.

 

- [Man] "If Super Mario Bros. 3 was a movie

 

"instead of a computer game, it would be up for an Oscar."

 

Paul Franklin, The Courier News.

 

- Mario, Mario! (upbeat rock music)

 

- [All] Mario, Mario, Mario, Mario, Mario, Mario,

 

Mario, Mario, Mario, Mario, Mario, Mario!

 

- [Narrator] By March, 700,000 copies had been sold.

 

Nintendo of America unleashed

 

their $25 million advertising campaign.

 

(mellow guitar music)

 

Commercials aired on TV.

 

There were cross-promotions with other companies,

 

including Popsicle and Nabisco.

 

NBC aired a Saturday morning cartoon,

 

"The Adventures of Super Mario Bros. 3."

 

McDonald's released a set of Happy Meal toys.

 

Meanwhile, competitors released new consoles to the market.

 

Sega had just launched their 16-bit Sega Genesis.

 

And after the success of the PC Engine in Japan,

 

NEC brought it over to North America as the TurboGrafx-16.

 

But it didn't matter.

 

Super Mario Bros. 3 was the talk of the schoolyard.

 

Kids bragged about how far they could get in the game

 

or shared secrets about where to find

 

warp whistles and new power-ups.

 

The game was so big and so full of secrets,

 

Nintendo worried it would overwhelm some players.

 

So in July of 1990, Nintendo Power put out

 

their first full strategy guide,

 

featuring Super Mario Bros. 3.

 

It had maps of every level, information on every enemy

 

and power-up, and revealed every secret in the game.

 

Fans of all ages were obsessed with the game.

 

One group of adult fans loved the game so much,

 

they ported it to the PC and sent it

 

to Nintendo, hoping to secure a license.

 

Nintendo was impressed but declined the offer.

 

That didn't faze the team of John Carmack,

 

John Romero, Tom Hall, and Adrian Carmack.

 

They were excited about their work,

 

and the following year, they formed a company, id Software,

 

the makers of Wolfenstein 3D and Doom.

 

By 1991, Nintendo sold more than eight million copies

 

of the game in North America,

 

grossing more than $400 million.

 

If Super Mario Bros. 3 were a business,

 

it would have ranked in the top-10 US toy companies of 1990.

 

At the time, it was

 

the bestselling standalone video game ever.

 

(reflective guitar music)

 

Before Super Mario Bros. 3, critics questioned

 

whether Nintendo was just a passing craze.

 

Electronic Arts President Trip Hawkins

 

compared the NES to Cabbage Patch dolls.

 

"This is a toy and that means it's a fad," he claimed.

 

After Super Mario Bros. 3, there would be no more doubts.

 

Nintendo reaped the rewards.

 

Their estimated revenue for 1990 was $3.4 billion,

 

which gave them a dominating 88% market share.

 

In 1991, they surpassed Toyota

 

as Japan's most successful company.

 

Nintendo earned $1.5 million per employee.

 

But it wasn't all roses.

 

The Federal Trade Commission investigated Nintendo

 

on allegations of antitrust violations,

 

such as price-fixing, in order to beat the competition.

 

Nintendo denied any wrongdoing but was ordered to send out

 

up to $25 million worth of rebates to customers.

 

The rebate took the form of a $5 coupon

 

that consumers could only use to buy more Nintendo games.

 

In total, Super Mario Bros. 3 sold

 

more than 17 million copies worldwide.

 

When combined with re-releases,

 

it's estimated to have sold more than 30 million copies.

 

But it was bigger than just money and sales figures.

 

Super Mario Bros. 3 was further proof

 

that home video games could be huge, sprawling adventures,

 

and even better than arcade games.

 

Shigeru Miyamoto became a superstar.

 

Celebrities like Paul McCartney

 

and Steven Spielberg flew to Japan to meet him.

 

His success ensured he would either produce

 

or direct all future big Nintendo releases.

 

His next Mario game, Super Mario World,

 

was a launch title for Nintendo's new 16-bit machine,

 

the Super Famicom, also known as the Super Nintendo.

 

With the updated hardware, Miyamoto was finally able

 

to let his hero ride a dinosaur.

 

Other companies took notice of Mario's success.

 

Sega saw the power of a flagship franchise

 

and began working on their own mascot, Sonic the Hedgehog.

 

His debut in 1991 on the Mega Drive and Genesis

 

created legit competition in the market,

 

leading to the great console wars of the '90s.

 

Even after Nintendo came out with the Super Nintendo,

 

people continued to play and love Super Mario Bros. 3.

 

It was listed in the top-20 NES games of Nintendo Power

 

until the system was discontinued in 1995.

 

When people look back on their childhood memories

 

with the NES, they almost always, without fail,

 

think of Super Mario Bros. 3, a game that felt nostalgic

 

yet revolutionary at the same time,

 

a game that lived up to its unparalleled hype.

 

(upbeat guitar music)

 

- [Announcer] Funding for Gaming Historian

 

is provided in part by supporters on Patreon.

 

Thank you.

 

1990年2月

 

任天堂アメリカは大人気ゲームをまさにリリースしようとしていた

 

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3である

 

「過激な宣伝」はようやく現実になった

 

日本で1年半早くリリースされた

 

インターネットが普及していないにも関わらず-

 

1989年の雑誌のプレビューと広告を通して-

 

北米のゲーマーはゲーム内容全てを知ることができた

 

ハリウッド映画にも登場した

 

店頭では輸入版や密輸版さえ販売されていた

 

だが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3というゲームは-

 

他のシリーズとは一線を画していた

 

このゲームは、任天堂やマリオシリーズが一発屋ではないことを証明した

 

そして、競合他社の相次ぐ新ハード発売にも関わらず

 

任天堂はビデオゲーム王者の地位を譲らなかった

 

これは、全世代のプレイヤーの心を虜にしたビデオゲームの物語である

 

「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3の物語」

 

第一部 究極のマリオゲーム

 

1986年の夏までに-

 

マリオは日本中を席巻していた

 

ファミコンで発売された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は大ヒットした

 

売り上げ本数は300万本を優に超えた

 

その年のベストセラー本「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完全攻略本」は-

 

ゲームをクリアするためのコツやトリックが書かれていた

 

マリオのテーマソングには歌詞が付けられ-

 

シングルとしてリリースされた

 

「GOGOマリオ!!」である

 

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は、ビデオゲームに対する世間の眼差しが変わっていくきっかけを作った

 

「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が登場する前は、

 

テレビゲームの子どもへの影響について、国会でも取り上げられたり、

 

新聞記事なんかでも、マイナスの話が本当に多かったんです。

 

ところが『スーパーマリオ』の明るさが

 

ファミコンへのマイナスイメージを一掃してくれたようなところがありました」

 

-今西紘之(元任天堂取締役広報室長)-

 

このゲームはファミコンの爆発的売り上げのきっかけになった

 

1986年6月までに-

 

任天堂は650万本以上を売り上げた

 

これは日本の家庭で5世帯のうち1世帯にはファミコンが置いてあるということになる

 

マリオ1の大ヒットを受け-

 

続編のリリースは待ったなしであった

 

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2は1986年6月3日に発売された

 

マリオ1の発売からまだ1年も経っていなかった

 

任天堂はディスクシステムをリリース

 

この拡張機器により、専用のディスクでファミコンを遊ぶ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

 

カートリッジよりも安価に生産でき-

 

データ容量もアップ

 

任天堂は以後、全てのビッグタイトルはディスクでの発売を見込んでいた

 

最も人気のあったゲームの続編は売り上げに貢献した

 

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2は最も売れたディスクシステムタイトルとなった

 

200万本以上を売り上げ-

 

プレイヤーは-

 

「さらなるマリオ」を求めていた

 

マリオ2は続編というよりは追加コンテンツという感じで-

 

見た目ではマリオ1とマリオ2はほぼ同一物だった

 

加えて難易度が極めて高く-

 

新規プレイヤーが拒絶する内容だった

 

任天堂はこのゲームを-

 

スーパープレイヤーのためのゲームだと自虐的に宣伝した

 

そして本当の続編を求めていたのはプレイヤーだけでは無かった

 

マリオ1、2を世に送り出した任天堂の開発第四部は-

 

準備を進めていた

 

究極のマリオゲームの開発に向けて

 

任天堂は開発に動き出す

 

開発第四部から10人を超える技術者が集められ、マリオ3開発のためのチームが結成された

 

リーダーは宮本茂

 

任天堂のミッキーマウスがマリオとしたら-

 

宮本茂は任天堂のウォルト・ディズニーだった

 

1981年にマリオが宮本に生み出されてから-

 

マリオは任天堂の顔となった

 

マリオ2の開発では、宮本は前線から一歩退いていた

 

父親になったのに加え、仕事では多くのプロジェクトを抱えていた

 

そして彼は再び続編の開発に深く関わることになる

 

マリオ3のほぼ全ての開発状況を俯瞰する立場になった

 

ディレクターは宮本の右腕、手塚卓志

 

1984年、24歳の時に任天堂に入社-

 

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とゼルダの伝説のデザインと開発に携わった後-

 

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2では、初めてディレクターとして開発に関わった

 

そのゲーム開発は期間が短く非常に密なスケジュールであったが-

 

彼の高い仕事能力が証明される結果となった

 

マリオ3の開発はさらにハードルが高かった

 

メインプログラマーは中郷俊彦

 

1983年から任天堂と仕事を始め-

 

アーケードのファミコンへの移植を担当していた

 

中郷の能力はゼルダとマリオの制作において宮本と手塚のアイデアを-

 

プログラミングで実現したことによって証明された

 

唯一の作曲担当だったのが近藤浩治

 

近藤が1984年に入社する以前-

 

BGMや音はプログラマーが作曲していた

 

近藤は任天堂で最初の作曲家の一人であった

 

ベテランに寄り添う形で開発第四部には-

 

若いデザイナーやプログラマーたちが自分たちの能力を証明してもらおうと必死だった

 

その一人、田邊賢輔という新人はマリオ3のレベルデザインだけでなく-

 

自身のゲームのディレクターも担当していた

 

夢工場ドキドキパニックである

 

森田和明は19歳でマリオ1のプログラミングに携わった天才プログラマーである

 

グラフィックデザイナーの江口勝也は宮本にその才能を見込まれ-

 

レベルデザインを任された

 

そしてデザイナーの紺野秀樹

 

彼はファミコンをプレイして以来、任天堂で仕事をしたいと夢見た男である

 

チームが結成され宮本は究極のマリオゲームの制作を開始した

 

この究極のマリオの制作には多くの性能が必要とされたが-

 

それは実現可能であった

 

マリオ2はディスクシステムでの発売であったが-

 

カートリッジ技術の向上によりディスクは不要の産物となった

 

電子部品は安価になり-

 

ストレージ容量は増加していた

 

さらに任天堂はMMCチップを開発

 

メモリマネージメントコントローラと呼ばれるもので-

 

ファミコンの性能を飛躍的に高めるものだった

 

それまで不可能だった多くのゲームの開発が可能となった

 

MMCチップのおかげでファミコンがゲーム市場に長らく存在できたと宮本は評価している

 

マリオ3ではMMC3チップが用いられ-

 

さらなるグラフィック向上、画面分割-

 

対角画面移動、メモリの増加が実現した

 

この性能を活かし、手塚は全く新しいことを試みた

 

「初代『スーパーマリオ』の難易度やステージ構成を変えてつくりましたけど-

 

同じ手はもう使えませんし-

 

全体を変えようと思ったんです」

 

-手塚卓志-

 

開発第四部の最初のアイデアは視点を変えることだった

 

マリオを俯瞰視点のゲームに作ってみたが-

 

宮本が気に入らなかった

 

(宮本)「俯瞰視点にすると、地面との距離感がつかみにくくなってしまうんです。

 

だから手塚には『絶対に苦労するよ』って言ったんです」

 

開発第四部はこのアイデアをボツにして-

 

一般的な真横視点とすることにした

 

任天堂はマリオをアスレチックゲームと表現した

 

プレイヤーが自由に動き回れ、速く走れて、高く飛べるゲームだと

 

(宮本)「マリオって若い人やあまりゲームを触ったことのない人でも簡単に取っかかれるし-

 

熱心なゲーマーでも飽きずにプレイし続けられるゲームやと思います」

 

このゲーム哲学が再度活かされる

 

さらにアスレチックなマリオゲームにしようと開発第四部はアイデアを練りだした

 

マリオが坂道を滑られるようにし-

 

物を持って蹴られるようにし-

 

さらに、空も飛べるようにした

 

絵面的にマリオを同じままには出来なくなった

 

最初の二つのマリオゲームはほとんど同じ見た目だった

 

そこで開発第四部はマリオの世界観を完全に作り変えた

 

前作から引き継がれたものは何一つなかった

 

全ての人物、敵キャラ、アイテム、フィールドは一新された

 

手塚卓志によって、可愛らしいアスレチックなグラフィックが生み出された

 

過去のマリオゲームで彼は多くのオブジェクトに目玉を書き足した

 

同じことをマリオ3でも施した

 

「手塚さんはわりと何にでも目を描きたがるんです」と-

 

デザイナー江口勝也は語った

 

色鮮やかで-

 

樹や茂みは踊っていて-

 

劇場の一幕のようであった

 

カーテンが上がってゲームが紹介され-

 

舞台セットのように土台は吊り下げられて、ブロックは背景に固定されていた

 

マリオは各ステージを舞台から退場するようにクリアした

 

開発第四部は全てのワールドも同様に一新した

 

マリオは8つのワールドを冒険していくことになり-

 

それぞれ独自の世界観を持っていた

 

草原の国

 

砂漠の国

 

海の国

 

巨大の国

 

空の国

 

氷の国

 

土管の国

 

暗黒の国

 

デザイナー達はコースをただひたすら作り続けた

 

紺野秀樹にとって、それは楽しいものではなかった

 

「私たちは画用紙の上にトレーシングペーパーを敷いて-

 

コースを毎日毎日入念に書いてました」と彼は振り返った

 

書き終わったコースはプログラマーに渡され-

 

マップ部屋という細長い会議室で一つ一つのコースをプログラミングによりデータ化されていった

 

時間の掛かるプロセスである

 

デザイナーはコースが出来上がるまで丸一日待たなければならず-

 

加えてコースには大量のバグが含まれていた

 

全てのコースをつなげるため、開発チームはワールド全体のマップを追加した

 

もはやコースを順番通りに進める必要はなく-

 

プレイヤーは各ワールド最終コースまで自由に経路を選ぶことができた

 

開発第四部はどのようにして、これらワールドのアイデアを生み出したのか?

 

彼らは地球上で最もファンタジーな場所でその着想を得たのだろう

 

1987年、宮本茂ら開発第四部のメンバーはインスピレーションを求め-

 

アメリカへと渡った

 

メンバーはいくつかの街を訪れた

 

ニューヨーク、サンフランシスコ-

 

そして、フロリダ州オーランドのディズニー・ワールド

 

ディズニー・ワールドにはおとぎの国にいるようなユニークなエリアが多数あった

 

マリオ3も同様で-

 

カラフルな8つのワールドを冒険する

 

中心に位置するシンデレラ城は-

 

全てのエリアをつないでいた

 

マリオ3でも同様であった

 

各ワールドの城はプレイヤーを導き-

 

同時に次のワールドへ進むための鍵になっていた

 

マリオ3にはディズニー・ワールドの片鱗があったと指摘する任天堂社員は、これまで誰一人としていないが-

 

この類似性は興味深い

 

新しいグラフィックとコースだけがマリオ3の新要素ではなかった

 

開発第四部は新しいパワーアップも追加

 

宮本のアイデアの一つに、マリオを恐竜に乗せるというものがあった

 

マリオ1の時から実現したかったアイデアだったが-

 

技術的に難しく、実現出来なかった

 

妥協する形で、ディレクターの手塚卓志は-

 

動物に乗るのではなく、動物に変身するアイデアを提示した

 

グッドアイデアだった

 

マリオは、あるアイテムやスーツを獲得すると-

 

それら独自のパワーや能力を持つ動物に変身できた

 

スーパーこのはでマリオはしっぽマリオとなり-

 

しっぽで敵を攻撃したり-

 

コース終盤まで飛び続けることができた

 

だがずっと飛び続けられる能力は便利すぎた

 

プログラムリーダー中郷俊彦は難色を示した

 

「そうしたら、作った地上のコースが全部台無しになるからやめてほしい」と手塚に苦言を呈した

 

一方、手塚はこのアイデアは使えると言い張った

 

結果、プログラマーが制限を加えて実装された

 

「滑走路」を走った後にだけ飛べるようにして-

 

飛行時間も短くした

 

カエルスーツを着たマリオは高くジャンプできて、速く泳げるが-

 

地上では移動速度が遅くなる

 

ハンマースーツを着たマリオはハンマーを投げることができ-

 

甲羅で炎から身を守ることができる

 

そして日本の神話を基にしているタヌキスーツ

 

しっぽマリオのようだが-

 

地蔵に変身して、しばらく姿を隠すことができる

 

宮本はタヌキスーツを好んでいた

 

(宮本)「海外のプレイヤーには理解できないとわかってますが、

 

あれを残せてとても興奮しましたね」

 

どこかの開発段階でマリオがケンタウロスに変身するアイデアが提案されたが-

 

これはボツになった

 

新たな能力と共に敵も追加された

 

見慣れた敵も登場する

 

クリボー

 

ノコノコ

 

ハンマーブロス

 

加えて多くの新しい顔も登場した

 

ブンブン

 

ガボン

 

巨大プクプク

 

いくつかの敵は開発者の個人的な経験に基づいている

 

ワンワンは、宮本が幼少期に近所の犬から受けた怖い体験が基にデザインされた

 

テレサは、ディレクターの手塚卓志の妻がモデルと考えられており-

 

普段は内気な女性だが-

 

遅くまで仕事をして帰宅すると怒っていた

 

コクッパ七人衆は開発第四部の若いデザイナーをモデルにデザインされた

 

それは彼らのハードワークに対する宮本からのご褒美であった

 

これらに加え、フィールド上でいつでも使えるアイテムも追加された

 

これにより初心者が難しいエリアをクリアしていくのが容易になった

 

オルゴールでマップ上の敵を眠らせることで-

 

マリオは敵を素通りできるようになる

 

ゼルダの伝説にも登場したフエを使うと、マリオはワールドをスキップできる

 

セーブ機能が無かったこともあり、フエを使って前回の続きから始めることも可能になった

 

ハンマーを使うとマップ上の岩を壊して近道や隠しエリアを見つけられる

 

ジュゲムの雲は、海外ではLakitu's cloudとも呼ばれているが-

 

使うとコースをスキップできる

 

パタパタの羽根を使うと、飛び続けることが可能となるが-

 

これは元々のしっぽマリオのアイデアであった

 

大きな変更を施す中で-

 

宮本はマリオ3には二つのコンセプトが存在すると保証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一つは初心者から上級者までスキルを問わず楽しめるゲームであること

 

新規プレイヤーはワールド序盤に多くの1UPキノコ、コイン、アイテムを見つけることができる

 

マップ上のミニゲームやキノピオの家で-

 

アイテムを取るチャンスが与えられる

 

コースが難しくなるにつれ-

 

プレイヤーは行き詰まることになる

 

二つ目のコンセプトは-

 

二人プレイを楽しくすることだった

 

マリオ1では一方のプレイヤーが死んだときに交代となっていた

 

マリオ3ではコースクリアで交代となり-

 

協力して攻略を進めたり、あるいはスコアを競うこともできる

 

バトルモードも追加された

 

これは1983年発売のマリオブラザーズがベースになっていた

 

これらグラフィック、コース、パワーアップ、アイテムなど全ての新要素の制作は-

 

スタッフのたゆまぬ努力により実現されたが-

 

彼らの体はボロボロだった

 

宮本は夜通し働いたこともあった

 

常にデザイナーの仕事をチェックし-

 

どうでもいいことでも変更点は容赦なく指示した-

 

たとえ開発が遅れる内容でも

 

「少しでもいいものにするためには-

 

遠慮なしで行くという姿勢が宮本さんにはありました」と

 

デザイナー江口勝也は宮本のことを語った

 

ディレクターの手塚卓志は当時の苦闘をこう振り返った

 

(手塚)「うまくはまらないことがよくあって、ずるずる開発が長引いてしまいましたね」

 

おそらくスタッフで最も苦闘したのは唯一の作曲家

 

近藤浩治であろう

 

二年前、彼はゲーム史に名を残す名曲を作曲した

 

マリオのテーマ曲である

 

今度はマリオ3のテーマを作曲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それば躊躇される仕事だった

 

(近藤)「初代の『スーパーマリオ』から、どういうふうに変えたらいいのか悩みましたね」

 

マリオ1のテーマのときは-

 

ゲームを実際に触りながら、それに合うように作曲した

 

今回はジャンルに焦点を当てた

 

近藤は多くの打楽器を利用し-

 

レゲエ音楽が出来上がった

 

開発終盤までに、彼は多くの音楽を作曲し-

 

宮本と手塚が加わってベストな曲を選び出した

 

そして1988年の春-

 

ついにマリオ3が完成した

 

究極のマリオを作りたいという宮本の宣言は、はったりではなかった

 

マリオ3を究極たらしめたのは、過去シリーズの踏襲と-

 

新しいアクション、パワーアップ、キャラクターそしてやりごたえのあるコースであった

 

隠し要素もふんだんに盛り込まれていた

 

強制スクロールやワールドマップはシリーズに欠かせないものとなった

 

開発第四部はマリオ3の開発に二年以上を費やした

 

開発費は高額で-

 

80万ドルかかったと報告された

 

マリオ3は、これまでで最も開発規模が大きく-

 

人海戦術を最大に用いて開発された任天堂ゲームであった

 

マリオ1のメモリは320キロビットであったのに対し-

 

マリオ3はその10倍の3メガビットであった

 

マリオ3が発売されようとしていた1988年秋には-

 

日本のビデオゲーム市場は変化していた

 

1987年、NECはコンソール市場に参入しPCエンジンを導入-

 

色鮮やかさと高解像度が売りだった

 

当時ファミコンより多く売れていた

 

セガもまた自社ハードを導入しようとしていた

 

メガドライブである

 

こうした動きにより、任天堂は新ハード開発開始に迫られた

 

宮本による究極のマリオゲームは、単なる続編以上の質が求められた

 

任天堂は新たな16ビットハードの開発に時間を費やさねばならなかった-

 

現在でもビデオゲーム王者であることを証明するために

 

マリオ3のビデオプレビューは1988年9月に公開された

 

もはやプレイヤーがプレイできるまでそれほど待つ必要は無くなった

 

1988年10月23日-

 

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3は日本で発売された

 

日本全国でマリオ3は遊ばれた

 

説明書には-

 

開発第四部からのメッセージも書かれていた

 

”プレイヤーの皆さんへ-

 

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3をお買い上げいただきまして、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マリオファンのみなさまのお声にお答えして-

 

前作よりも、もっともっと楽しく新しいゲームをと考え出来上がったのが-

 

この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3です

 

今度の旅はいろんな謎や仕掛けがいっぱい

 

はたしてマリオとルイージにはどんな不思議が待っているのか?

 

これからじっくりお楽しみください

 

敬具 マリオスタッフ”

 

マリオ3は大成功を収めた

 

日本の人気雑誌、週刊ファミ通では-

 

マリオ3はクロスレビューで40点中35点を獲得し、素晴らしいゲームだと評価された

 

マイコンBASICマガジンも同様の評価で-

 

「アクションゲームの最高峰」と賞した

 

1988年終わりまで、マリオ3は品薄状態だった

 

5カ月連続で、マリオ3は日本で最も売れているファミコンゲームであった

 

マリオ旋風が再び日本中を席巻した

 

マリオグッズが店頭にあふれかえった

 

サウンドトラックがCDとカセットテープで発売され-

 

これらは近藤が作曲したオリジナル曲のアレンジやリミックスバージョンであった

 

マリオのアニメさえも存在した

 

”アマダアニメシリーズ スーパーマリオ” は-

 

3つの昔話を書き直し-

 

マリオ3のキャラクターに置き換えた作品であった

 

日本中のプレイヤーがマリオ3の隅々まで楽しんでプレイしていたが-

 

海外勢は発売を待ち続けた

 

北米でマリオ3が発売されるのに1年以上かかった

 

欧州はほぼ3年の歳月がかかった

 

この長い待ち時間によって-

 

たった一つのゲームに対してかつてないほど過激な期待が寄せられた

 

第二部 過激すぎるゲーム宣伝

 

任天堂の成功は日本だけではなかった

 

任天堂は北米市場も牛耳っていた

 

1988年だけで-

 

任天堂は17億ドルの利益を獲得し-

 

市場シェアは驚異の80%で-

 

アタリやセガは足元にも及んでいなかった

 

NESがアメリカ中で発売されてから二年間で-

 

1000万台以上売れた

 

「全国で大ヒットしている。

 

アメリカの子供たちは『これはすごい。私たちも欲しい』とみんな言っている。

 

アメリカの8歳から15歳の男の子にとって-

 

任天堂を持っていないことは野球バットを持っていないのと同じだと感じている」

 

-リック・アングイラ (トイアンドビジネスワールド)-

 

任天堂の成功は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の人気によってもたらされた

 

任天堂アメリカはControl Deck Set にマリオ1を同梱した

 

これによりマリオ1は最も人気な任天堂タイトルとなった

 

ファンはさらなるマリオを求めた

 

1988年10月-

 

日本でマリオ3が発売された同じ月に-

 

任天堂アメリカは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2を発売

 

ただ日本版のマリオ2とは全く異なっていた

 

任天堂アメリカの製品分析マネージャーのハワード・フィリップスは-

 

日本の新作任天堂ゲームを評価していた人物で-

 

日本版マリオ2を拒絶したことは有名な話である

 

見た目がマリオ1と全く同じことに加え-

 

さらに重要なことに-

 

難易度が高すぎた

 

(フィリップス)「私はコントローラーを置いて-

 

こんな酷いゲームを宮本さんがデザインしたのかと愕然としました」

 

日本版マリオ2の北米での発売は賢明ではないと判断され-

 

任天堂は別のタイトルをマリオゲームに作り直した

 

夢工場ドキドキパニックは-

 

1987年ディスクシステムで発売され-

 

これもまた開発第四部によって作られたゲームである

 

宮本茂が開発に携わり-

 

マリオ3のレベルデザイナー田邊賢輔がディレクターであった

 

グラフィックは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より優れており-

 

アスレチックゲームのゲーム性にフィットしていた

 

そこで任天堂はドキドキパニックのキャラクターをマリオのキャラクターに換え-

 

北米と欧州で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2として販売した

 

そんな経緯をプレイヤーはつゆ知らず-

 

マリオ2は1988年ホリデーシーズンの最も熱いクリスマス商品となった

 

すぐさま売り切れになった

 

だが人気だけが店頭に置かれていない理由ではなかった

 

その年、エレクトロニクス業界全体が電子部品不足に苦しんでいた

 

新世代の半導体とチップ技術により製造業の生産能力にバラつきが生じた

 

そして需要はこれまでより高く-

 

ビデオカメラや携帯電話が爆発的に売れていた

 

部品価格は跳ね上がり-

 

メモリチップは1987年に2ドルだったのが-

 

1988年には10~12ドルになっていた

 

任天堂は大打撃を受けた

 

供給を維持するため、任天堂はいくつもの新作ゲーム開発を中止した

 

さらに任天堂はサードパーティ製を含むすべてのソフトの生産管理をしていたため-

 

ゲームの著作権元と緊張状態にあった

 

ゲーム会社は最初に発注した量よりも少ない量で生産すると通知された

 

いくつかの店舗は恩恵を受け-

 

ゲーム価格を70ドルにまで上げた

 

アナリストはビデオゲーム供給量が-

 

需要の15%を下回っていると見積もった

 

とあるレポーターが任天堂アメリカのマーケティング副部長のピーター・メインに-

 

「供給不足にどう対応するのか?」と尋ねたところ-

 

彼はこう返答した

 

「ついでに神にすがって祈るとでも言っとく?」と

 

そんな中、任天堂アメリカはマリオ3のコピーを分析のため日本から受け取った

 

社内ではマリオ3は飛ぶように売れると見込んでいた

 

製品分析マネージャーのハワード・フィリップスはマリオ3をプレイし-

 

度肝を抜かれた

 

「私にとってこのゲームは、ただの続編でも-

 

ただ楽しく手ごたえのあるゲームではなく-

 

これぞまさしくビデオゲームの神髄でした」

 

-ハワード・フィリップス-

 

しかし、いくつかの変更が必要とされた

 

ゲームは日本版マリオ2ほどではないが-

 

高い難易度であった

 

日本版ではパワーアップ状態のマリオが攻撃を受けるとチビマリオに戻っていた

 

北米版では一度攻撃を受けても大きなマリオのままとした

 

同様に敵キャラの名前も変更され-

 

コクッパ七人衆は特に有名である

 

任天堂アメリカのローカライザーで大の音楽好きであるデイブ・ブルックスは

 

コクッパ達に有名ロックスターの名前を付けた

 

彼は乱れ髪のコクッパを見て

 

即座にルドウィグ・フォン・ベートーヴェンだと感じた

 

そして、ルドウィッグ・フォン・クッパと名付けられた

 

ウェンディ・O・クッパはパンクロッカーのウェンディ・O・ウィリアムスにちなんで名づけられた

 

ではイギー・クッパは?

 

パンクスターのイギー・ポップ

 

眼鏡をかけたロイ・クッパはロイ・オービソンから

 

レミー・クッパはモーターヘッドの伝説のスター、レミー・キルミスターから

 

だが全てのコクッパがミュージシャンに因んだものではなかった

 

ブルックスはモートン・クッパ・Jrをずる賢く大嘘つきな男に感じたため-

 

トークショーの司会者で俗悪番組の先駆者でもあるモートン・ダウニー・Jrから名付けられた

 

ラリー・クッパにのみ限り-

 

単純に名前がしっくりきたのでそう名付けられた

 

一方で業界全体は待ちわびていた-

 

日本で最も売れたマリオ3は-

 

いつ北米にやってくるのかと

 

任天堂アメリカは困窮していた

 

チップ不足により、需要に応える十分な数のゲームを製造できなかった

 

だが専門家によって1989年にはチップ不足は解消されると見込まれた

 

マリオ2は発売されて間もないが、十分な売り上げだった

 

マリオ3を市場に出すには早すぎると判断された

 

任天堂の新型携帯ゲーム機、ゲームボーイも控えていた

 

ゲームボーイは1989年の夏に発売予定であった

 

大人気タイトル、マリオ3の発売はゲームボーイの存在を覆い隠す恐れがあった

 

単にあれこれ考えるのをやめ、任天堂はある戦略を取った

 

マリオ3を1990年度第一四半期の発売を計画した

 

歴史的に第一四半期はソフトの売れ行きがよいことが分かっていた

 

任天堂は1989年にマリオ3のティーザー広告を出し-

 

大型宣伝費に割り当てる2,500万ドルを築き上げた

 

1989年1月、70万人のニンテンドウ・パワー購読者は

 

マリオ3の最初のティーザー広告を目にした

 

それは単なる一文であった

 

第4号の中で-

 

厳選された任天堂ゲームが遊べるアーケード筐体 PlayChoice-10で-

 

マリオ3がもうじき遊べると宣伝されていた

 

任天堂は第5号で再びティーザーを載せ-

 

コンテストの勝者は、シカゴでのサマー・コンシューマー・エレクトロニクス・ショーに参加できると宣伝した

 

プレイヤーは任天堂に手紙を書き-

 

マリオ3について質問した

 

ニンテンドウ・パワー第6号で-

 

ある読者は、任天堂は本当にマリオ3を発売する気があるのか尋ねた

 

回答は ”PlayChoice-10では直に遊べるようになるが-

 

NESでもすぐに出るかというとそうした計画はない”とした

 

しかし任天堂が新作ゲームを宣伝するPak Watch sectionでは-

 

マリオ3が載っていた

 

1989年夏までに-

 

エレクトロニック・ゲーミング・マンスリーやゲームプロといったビデオゲーム雑誌では-

 

日本からマリオ3を仕入れ、多くのレビューをスクリーンショットと共に記載した

 

数多くの北米プレイヤーにとって-

 

これがマリオ3との最初の出会いであった

 

ところが7月に数人のプレイヤーは-

 

マリオ3で遊んでいた

 

1989年7月15日-

 

任天堂はマリオ3を PlayChoice-10 にてリリース

 

任天堂アメリカの上層部はこれを-

 

”筐体機ゲームで最高のソフト”と呼んだ

 

NESよりも圧倒的にプレイできるゲームが少ないにもかかわらず-

 

その噂は瞬く間に広まったようである

 

ゲーセン経営者はマリオ3によって PlayChoice-10 における収益が3倍になったと報告した

 

一方、ネバダとカリフォルニアでは-

 

ユニバーサル・ピクチャーズがマリオ3を歴史上、最も期待が寄せられるゲームにさせた-

 

とある映画を撮影していた

 

1989年、ユニバーサル・スタジオの社長トム・ポロックは頭を抱えていた

 

映画版”宇宙家族ジェットソン”はホリデーシーズンの公開に間に合わなくなった

 

ポロックは代わりとなるファミリー向け映画を用意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その年、彼は任天堂の爆発的人気を目の当たりにし-

 

ビデオゲームを題材にした映画は売れると考えた

 

そこでポロックは任天堂のビル・ホワイトおよびピーター・メインと共同制作について協議した

 

ポロックは、映画 ”トミー” の子供版を提案した-

 

同名のロックアルバムを映画化したもので体の不自由な男がピンボール王者になる物語である

 

任天堂がよりよい広告費を獲得できるはずはなかった

 

製品の映画使用を許可する代わりに-

 

任天堂はライセンス料を受け取り、全ゲームのセリフや映像の使用を承認した

 

ビル・ホワイトは映画の進捗を確認するため頻繁にセットに出向いた

 

(ホワイト)「目下我々の心配事は、ゲーム映像を立派に見せているのかということでした」

 

その映画は ”スウィート・ロード” と呼ばれた

 

映画はジミーという物静かな男の子の物語で-

 

カリフォルニアへ行きたがっていた

 

腹違いの兄、コーリーは-

 

自閉症患者の収容施設からジミーを連れ出し、カリフォルニアへと向かう

 

その道中、ヘイリーという女の子と出会い-

 

すぐにコーリーとヘイリーはジミーのゲームの腕前が非常に高いことを見出す

 

二人はジミーをユニバーサル・スタジオで開催されるゲームトーナメント「ビデオ・ハルマゲドン」に参加させることにし-

 

賞金5万ドルを山分けしようとした

 

三人はロサンゼルスに向け出発

 

家族や賞金稼ぎが彼らを追っていた

 

映画は任天堂製品であふれかえっており、ビデオゲーム-

 

ニンテンドウ・パワー・ライン、さらにパワーグローブさえ登場した

 

スウィート・ロードは1989年12月15日、北米で公開された

 

批評家からは酷い評価を受けた

 

ロジャー・イーバートはこの映画を-

 

「映画というメディアを笠に着た、ただの任天堂ゲーム宣伝とユニバーサル・スタジオ・ツアーである」と呼んだ

 

だがそうした評価は映画を見た子供全てに関係するわけではなかった

 

最大の見所は映画終盤-

 

ビデオ・ハルマゲドンの競技者たちが-

 

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3をプレイするシーンである

 

さあ、そして次は...

 

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3をプレイしてもらいます!!!

 

大多数の視聴者にとって-

 

これこそが続編マリオのプレイ映像を見る初の機会であった

 

市場での任天堂一強状態と大衆への浸透はとどまるところを知らず-

 

減速する兆候は微塵もなかった

 

1989年だけで任天堂は-

 

小売利益総額27億ドルを計上した

 

NESはまたもや-

 

3年連続でNo.1のおもちゃとなった

 

アメリカ全世帯の22%がNESを持ち-

 

2,000万台売れた

 

任天堂の新型携帯機、ゲームボーイは-

 

その年の初めに発売され、売り切れ続出だった

 

200以上もの任天堂ライセンスのマリオグッズで溢れかえっていた

 

国中のデパートで任天堂専門店が登場し、任天堂関連の製品のみ販売した

 

ニンテンドウ・パワーの購読者は180万人にまで膨れ上がった

 

ゲーム攻略のヒントを聞けるニンテンドウ・パワー・ラインには-

 

一週間で14万件もの電話が鳴った

 

任天堂とマリオ3を取り巻くこの熱は-

 

沸点に達した

 

子供たちはクリスマスプレゼントにマリオ3を望んだ

 

いつ発売するのかわからないにもかかわらず

 

それほど長く待つ必要はなくなっていた

 

第三部 史上最大のビデオゲーム

 

1990年1月、ニンテンドウ・パワー購読者は目新しい雑誌を受け取った

 

彼らが待ち望んでいたある特集が組まれていた-

 

それは公式の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3のレビューで-

 

開発の舞台裏と共に取り上げられていた

 

ニンテンドウ・パワーでレビューが取り上げられたことは、発売が間近であることを意味する

 

まさにその翌月の2月-

 

アメリカ中の店舗で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3が販売され-

 

価格は49.95ドルであった

 

客が店頭に殺到した

 

発売後2日で25万本が売れ-

 

どこの店頭も売り切れ状態だった

 

任天堂はゲームを迅速に十分な量を製造できなかった

 

店頭では一日も経たずに品切れになってしまっていた

 

「電話での問い合わせは任天堂かマリオ3のことでした」と

 

シカゴのあるトイザらス店員は口にした

 

「いつ入荷するのかわからないのに加え、店頭に置いたらすぐになくなってしまいます」

 

一方かろうじて入手できたプレイヤーは-

 

これが任天堂史上最大のゲームであることを容易に理解した

 

「仮に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3がゲームではなく映画だったら-

 

オスカーにノミネートしていただろう」

 

-ポール・フランクリン(クーリエ・ニュース)-

 

3月までに、70万本を売り上げていた

 

そしてマリオ3の宣伝のため2,500万ドルを投下した

 

CMがテレビで流れた

 

ナビスコやポプシクルといった他社とのコラボも実施された

 

NBCはサタデー・モーニング・カートゥーンにて-

 

”The Adventures of Super Mario Bros. 3”を放送

 

マクドナルドのハッピー・セットのおもちゃにもなった

 

一方、競合他社は新ハードを市場に導入した

 

セガは GENESIS を発売したばかりであった

 

さらに日本でのPCエンジンの成功に後押しされ-

 

NECはこれをTurboGrafx-16という名称で北米でリリース

 

だがそんなことはどうでもよかった

 

マリオ3は学校中の話題になっていた

 

子供たちはゲームの進行度を自慢し合ったり-

 

ワープフエやパワーアップスーツの隠し場所をシェアした

 

ボリューム満点かつ余りに大量の隠し要素があったため-

 

任天堂はプレイヤーが萎えてしまうことを恐れた

 

そこで1990年7月、ニンテンドウ・パワーにて

 

初めての完全攻略特集を組み-

 

マリオ3を取り上げた

 

全てのコースのマップ-

 

全ての敵キャラとパワーアップの情報-

 

そして全ての隠し要素が明かされた

 

年齢を問わずファンはゲームの虜になった

 

あるファングループはマリオ3をこよなく愛していたため-

 

マリオ3をPCに移植し、ライセンス取得のため任天堂へ送った

 

任天堂は興味を示したが-

 

申し出は拒否された

 

メンバーのジョン・カーマック、ジョン・ロメロー

 

トム・ホール、エイドリアン・カーマックはびくともしなかった

 

自分たちの仕事に夢中だった彼らは-

 

その翌年、id Software を設立

 

Wolfenstein 3D や DOOM で有名な会社である

 

1991年までに、任天堂は北米で800万本以上を売り上げ-

 

その利益は4億ドルに上った

 

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3が会社であったなら

 

1990年のアメリカ玩具企業トップ10にランクインしていただろう

 

その当時としては-

 

これまでに類を見ないベストセラービデオゲームであった

 

マリオ3以前、批評家たちは任天堂の人気が一過性の物なのかどうか疑問であった

 

EAの社長トリップ・ホーキンスはNESをキャベツ畑人形になぞらえ-

 

「ただのおもちゃだから、すぐ飽きられる」と断言した

 

マリオ3以後、その人気を疑う者はいなくなった

 

任天堂は多くの利益を上げた

 

1990年の推定収益は34億ドルにも上り-

 

市場シェア88%を占めていた

 

1991年任天堂は日本で最も成功している企業トヨタを凌いだ

 

従業員一人当たり150万ドル稼いでいた

 

だが全てが華やかなわけではなかった

 

連邦取引委員会は他社を打ち負かすよう価格操作を行い-

 

反トラスト法違反であるとの申立てを受け任天堂を調査した

 

任天堂はあらゆる不正を否定したが-

 

割戻金として2,500万ドル分を消費者に還元するよう命令された

 

割戻金は5ドル分のクーポンとして-

 

消費者が任天堂ゲームを買うためにのみ使われた

 

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3は全世界累計1,700万本売り上げた

 

リメイク版を含めると推定3,000万本にも上る

 

だがマリオ3は商業的成功以上の存在となった

 

マリオ3は家庭用ビデオゲームが息の長く、一過性に終わらない商品であることをはっきりと証明し-

 

アーケードゲームよりも優れていた

 

宮本茂はスーパースターとなった

 

ポール・マッカートニーやスティーブン・スピルバーグといったセレブ達は彼に会うために来日した

 

彼はこの先全ての任天堂ビッグタイトルの制作あるいは監督を任されるようになった

 

彼の次のマリオゲーム、スーパーマリオワールドは-

 

任天堂の新作16ビットマシーンのスーパーファミコンのローンチタイトルとなった

 

海外ではスーパーニンテンドウとして知られているハードで-

 

宮本はこの新しいゲーム機でついにマリオを恐竜に乗せることができた

 

他社はマリオの成功に着目した

 

セガは主力となる看板タイトルの力に目を付け-

 

会社独自のキャラクター制作を始めた

 

ソニック・ザ・ヘッジホッグである

 

1991年にメガドライブとGENESISで初登場し-

 

熾烈な市場競争を生み出し-

 

90年代の大規模なゲーム機戦争へと導いた

 

スーパーニンテンドウ発売後にもかかわらず-

 

人々はマリオ3をこよなくプレイし続けた

 

ニンテンドウ・パワーではNESゲームトップ20以内にランクインし-

 

それはNESの生産が終了する1995年まで続いた

 

プレイヤー達がNESで遊んだ子供時代を振り返れば-

 

そこにはいつでもスーパーマリオブラザーズ3との色褪せない思い出がある

 

ノスタルジックかつ、今もなお斬新なビデオゲームであり-

 

いつの時代もプレイヤーを満足し続ける作品である。

 

手塚卓志はマリオ3を彼の最初の代表作だと考えている

 

彼は任天堂でほとんどすべてのマリオタイトルの監修あるいはプロデューサーを続けている

 

中郷俊彦は現在、任天堂ゲームのプログラムを受託開発する株式会社SRDの社長を務めている

 

中郷、手塚、宮本は任天堂社内でドリームチームとして認識されている

 

近藤浩治はマリオ3を彼が作曲した中でも最も困難なゲームであったと考えている

 

彼は現在も任天堂の作曲家として活躍している

 

田邊賢輔は「ゼルダの伝説 時のオカリナ」を含め、いくつかのゼルダタイトルのスクリプトを担当した

 

彼は現在も任天堂で外注作品のプロデューサーとして活躍している

 

森田和明は名作と呼ばれた多くの任天堂作品のプログラムに携わった

 

彼は現在、株式会社SRDにてテクニカルフェローを務め、主にゼルダの伝説シリーズの開発に携わっている

 

江口勝也は1993年にスターフォックスの開発で初めてディレクターを担当した

 

2001年、彼は「どうぶつの森」を開発

 

そのゲームは、任天堂の最も成功したタイトルの一つとして知られている

 

紺野秀樹は「スーパーマリオカート」で共同ディレクターを担当し-

 

それは最も売れたスーパーファミコンゲームの一つとなった

 

紺野は現在任天堂でスマホゲーム開発を監修している

 

ハワード・フィリップスは任天堂を離れ、1991年にルーカスアーツに入社

 

彼にとってマリオ3は二番目に最もよくできたゲームであると明かしたが-

 

彼は一番を明かすつもりはないと語っている

 

ピーター・メインは2002年に任天堂アメリカを退社

 

任天堂アメリカ社長、荒川實は-

 

「彼なしでは任天堂の劇的成功はなかっただろう」と明言した

 

宮本茂は現在、任天堂の代表取締役フェローを務めている

 

彼は永遠に語り継がれる最も偉大なゲームデザイナーの一人であると称されている

 

日本語字幕 (Japanese Subtitles):geek WAVE / 化学者のゲーム実況

 

俯瞰視点マリオアニメーションおよびケンタウロスのスケッチは本ドキュメンタリー制作のために再現されたものです

 

"The Wizard" は Universal Pictures の著作物です

 

Gaming Historian は、一部 Patreon サポーターの出資によりお送りしております

 

ご視聴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Era febrero de 1990.

 

Nintendo América estaba a punto de lanzar

 

uno de sus mayores juegos de todos los tiempos,

 

Super Mario Bros. 3, y la expectación era real.

 

Super Mario Bros. 3 ya había salido hace año y medio

 

en Japón, e incluso en una época antes de Internet,

 

los jugadores de Norteamérica lo sabían todo sobre él.

 

A lo largo de 1989, las revistas imprimieron previews y teasers.

 

Una película de los grandes de Hollywood mostró el juego.

 

Había tiendas que incluso vendían versiones de importación

 

o no autorizadas (bootleg) del juego.

 

Pero Super Mario Bros 3. era más

 

que sólo otro juego de la saga.

 

Demostró que Nintendo y Super Mario Bros.

 

no eran una moda pasajera.

 

E incluso con competencia de otras empresas,

 

Nintendo aún era la reina de los videojuegos.

 

Esta es la historia de cómo un juego marcó los corazones

 

y mentes de toda una generación de jugadores.

 

Esta es la historia de Super Mario Bros. 3.

 

PARTE 1: EL MARIO DEFINITIVO

 

En el verano de 1986, la fiebre Mario había asolado oficialmente Japón.

 

 

(NIÑOS) ¡Super Mario Bros ..!

 

Super Mario Bros. de Nintendo, para la Famicom

 

fue un éxito masivo, vendiendo más de tres millones de copias.

 

El libro más vendido del país fue

 

"Super Mario Bros. La guía de estrategia completa",

 

con consejos y trucos para pasarse el juego.

 

Hasta se le puso letra a la sintonía de Mario Bros.

 

y se lanzó como un single, "Go Go Mario".

 

(LETRA) "Otra vez hoy, Mario alegre sale

 

para salvar a la Princesa Peach[...]"

 

Super Mario Bros. cambió incluso

 

la visión pública de Japón sobre los videojuegos.

 

«Antes del lanzamiento de Super Mario Bros,

 

hasta el parlamento había debatido la problemática

 

de la influencia de los videojuegos en los niños,

 

y los artículos periodísticos eran negativos en su mayoría.

 

Pero la atmósfera brillante de Mario ha alejado

 

ese prejuicio de la Famicom.»

 

-- Hiroshi Imanishi, Nintendo

 

 

El juego causó que las ventas de la Famicom

 

aumentaran considerablemente.

 

Hacia junio de 1986, Nintendo había vendido

 

más de 6,5 millones de unidades.

 

1 hogar de cada 5 en Japón tenía una Famicom.

 

Y con el enorme éxito de Super Mario Bros.,

 

no había dudas de que habría una secuela.

 

Super Mario Bros. 2 se lanzó el 3 de junio de 1986,

 

menos de un año después del debut del juego original.

 

Nintendo sacó el juego para el Famicom Disk System,

 

un nuevo periférico para la Famicom

 

que reproduciría juegos usando disquetes propietarios.

 

Eran más económicos de fabricar que los cartuchos,

 

y tenían mayor capacidad.

 

Nintendo tenía esperanzas de dedicar todos sus grandes lanzamientos

 

al Disk System.

 

Una secuela del juego más popular de Famicom

 

ayudaría con las ventas de la disquetera.

 

Super Mario Bros. 2 se convertiría en el juego más vendido

 

del Disk System, vendiendo más de 2 millones de copias.

 

Pero los jugadores tenían hambre de más.

 

El juego tenía la sensación más de un "pack de expansión"

 

que de una auténtica secuela.

 

Visualmente, SMB y SMB 2

 

eran prácticamente idénticos.

 

Además, era un juego considerablemente difícil,

 

por lo que era una decepción para nuevos jugadores.

 

Nintendo incluso lo anunciaba como tal,

 

metiendo una etiqueta "Para Super Jugadores"

 

en la carátula.

 

Y no sólo los jugadores querían una auténtica secuela.

 

Research & Development 4, el equipo

 

detrás de los dos primeros juegos de SMB,

 

estaban listos para proveer a la Famicom

 

con el juego de Mario definitivo, así que Nintendo se puso manos a la obra.

 

Un equipo de más de 10 personas en R&D4 serían responsables

 

de hacer Super Mario Bros. 3.

 

Su líder era Shigeru Miyamoto.

 

Si Mario era el Mickey Mouse de Nintendo,

 

Shigeru Miyamoto era el Walt Disney de Nintendo.

 

Creó a Mario en 1981, y desde entonces,

 

había visto cómo su personaje se convertía en la cara de la empresa.

 

Miyamoto dio un paso atrás

 

en el desarrollo de SMB 2.

 

Hacía poco que se había convertido en padre,

 

y estaba involucrado en demasiados proyectos, pero ahora

 

estaba listo para dar lo mejor de sí en una secuela.

 

Supervisaría prácticamente cualquier aspecto

 

de la creación de SMB 3.

 

La mano derecha de Miyamoto, Takashi Tezuka,

 

fue nombrado director del juego.

 

Tezuka se unió a Nintendo hace dos años, con 24,

 

y fue clave en el diseño y desarrollo de

 

SMB y The Legend of Zelda.

 

Tras ello, Tezuka obtuvo

 

su primer cargo como director en SMB 2.

 

Su trabajo en dicho juego, en el que encaraba un estricto plazo de entrega,

 

demostró que era más que capaz de asumir el trabajo.

 

Pero SMB 3 demostraría ser un desafío.

 

Toshihiko Nakago era el programador jefe.

 

Empezó su carrera en Nintendo en 1983,

 

portando juegos de recreativas a la Famicom.

 

Nakago demostró su valía ayudando a Miyamoto y Tezuka

 

a llevar sus ideas a la práctica programando

 

The Legend of Zelda y Super Mario Bros.

 

Como único compositor, estaba Koji Kondo.

 

Antes de la llegada de Kondo a Nintendo en 1984,

 

la música y los efectos sonoros eran tarea de los programadores.

 

Kondo era uno de los primeros miembros

 

del departamento musical de Nintendo.

 

Junto a veteranos, R&D4

 

tenía un grupo de diseñadores jóvenes

 

y programadores con ansias de demostrar su valor.

 

Entre ellos estaba Kensuke Tanabe, un nuevo fichaje

 

que no solo debía diseñar niveles

 

para SMB 3, sino que además estaba dirigiendo

 

su propio juego: Yume Kōjō: Doki Doki Panic!.

 

Kazuaki Morita, un genio de la programación

 

que ayudó a programar SMB con 19 años,

 

Katsuya Eguchi, un artista gráfico

 

cuyo talento atrajo al ojo de Miyamoto.

 

Se trajo como diseñador de niveles.

 

Y Hideki Konno, un diseñador que había soñado con trabajar

 

en Nintendo, desde que comenzó a jugar a juegos de Famicom.

 

Con su equipo listo, Miyamoto podía empezar

 

a producir su juego de Mario definitivo.

 

Pero crear este nuevo juego requeriría un montón de potencia.

 

Por suerte, la había.

 

Aunque SMB 2

 

se lanzó para el Famicom Disk System,

 

los avances en tecnología de cartuchos

 

pronto convirtieron al Disk System en obsoleto.

 

Los precios de los chips estaban a la baja,

 

y la capacidad de almacenamiento aumentaba.

 

Internamente, Nintendo desarrollaba chips MMC,

 

controladores de gestión de memoria (Multi Memory Controllers),

 

que expandían considerablemente las capacidades de la Famicom.

 

Los desarrolladores podían hacer juegos antes imposibles.

 

Miyamoto atribuyó a los MMC la razón

 

de que la Famicom perdurara tanto en el mercado.

 

SMB 3 usaba el chip MMC3,

 

que permitía mejores gráficos, división de pantalla,

 

desplazamiento diagonal, y más memoria.

 

 

Con esta potencia, Tezuka estaba listo para probar algo nuevo.

 

«Hicimos SMB 2

 

cambiando la dificultad original del juego

 

y el diseño de las pantallas, pero no podíamos hacer eso de nuevo,

 

así que quise que cambiara todo.»

 

-- Takashi Tezuka

 

 

La primera idea de R&D4

 

fue cambiar la perspectiva.

 

Experimentaron haciendo un juego de Mario

 

usando perspectiva isométrica, pero no era del agrado de Miyamoto.

 

"Con una vista diagonal desde un poco por arriba,

 

perdías tu sentido de distancia al suelo.

 

Así que le dije que el desarrollo

 

sería difícil", dijo.

 

R&D4 desechó la idea

 

y volvió a la vista estándar lateral.

 

 

Nintendo se refería a los juegos de Super Mario como "juegos atléticos",

 

juegos donde los jugadores podían moverse libremente,

 

correr rápido y saltar alto.

 

"Es un tipo de juego fácilmente abordable

 

para jugadores jóvenes e inexpertos,

 

pero también lo pueden jugar aquellos "hardcore" experimentados

 

sin que se cansen de él", decía Miyamoto.

 

 

Esta filosofía de juego reemergió.

 

R&D4 comenzaron a lanzar nuevas ideas

 

para dar a Super Mario una sensación más atlética.

 

Podrían hacer que Mario se deslizara por colinas,

 

cogiera y golpeara objetos, e incluso volar por el aire.

 

Gráficamente, Mario no podía seguir siendo igual.

 

Los dos primeros Super Mario eran demasiado similares,

 

así que R&D4 dio al universo Mario un completo lavado de cara.

 

No se recicló nada de los dos anteriores juegos.

 

Cualquier personaje, enemigo, objeto

 

y entorno era de nueva factura.

 

A los gráficos se les otorgó una estética un tanto mona,

 

gracias al director Takashi Tezuka.

 

En el anterior Mario,

 

añadió ojos a muchos objetos.

 

Hizo lo mismo en SMB 3.

 

"Quería ponerle ojos a todo",

 

decía el diseñador Katsuya Eguchi.

 

Los colores eran brillantes y variados.

 

Los árboles y arbustos bailaban en pantalla.

 

Los elementos visuales tenían un punto teatral.

 

Un telón subía para introducir el juego.

 

Plataformas colgando y bloques atornillados al fondo

 

que parecían elementos de un escenario.

 

Mario acababa cada nivel saliendo del escenario.

 

Así mismo, R&D4 puso estos elementos en un mundo completamente nuevo.

 

Ahora, Mario tenía ocho nuevas áreas que explorar,

 

cada una con su propio tema visual.

 

Las Praderas, El Desierto

 

Junto al mar, Mundo Gigante

 

El Cielo, La Isla Helada

 

El Laberinto de Tuberías, La Tierra Oscura.

 

Los diseñadores creaban niveles como máquinas.

 

Hideki Konno no guarda muy buenos recuerdos de la experiencia.

 

"Poníamos papel de calco sobre papel cuadriculado

 

y dibujábamos minuciosamente niveles cada día", recuerda.

 

Una vez terminados, los diseñadores llevaban sus niveles a la

 

Sala de Mapas, una sala larga y estrecha donde los programadores

 

cogían las hojas de papel cuadriculado y programaban datos de mapa.

 

Era un proceso largo.

 

Los diseñadores debían esperar un día entero

 

para ver su creación en pantalla.

 

Y aun con eso, había un montón de bugs que corregir.

 

Para conectar los niveles,

 

el equipo de desarrollo añadió un mapa general.

 

Los niveles ya no se jugaban en orden lineal.

 

Ahora, los jugadores podían escoger su propio camino

 

hacia el final de cada área.

 

 

 

¿Cómo se les ocurrieron estos

 

nuevos mundos a R&D4?

 

Quizás tomaron su inspiración

 

del lugar más mágico de la Tierra.

 

En 1987, Shigeru Miyamoto y otros miembros

 

del equipo de R&D4 necesitaban inspiración,

 

así que viajaron a los Estados Unidos.

 

 

Visitaron varios lugares, incluyendo Nueva York,

 

San Francisco y Disney World en Orlando, Florida.

 

 

Disney World tenía diversas áreas únicas,

 

y parecía un lugar de cuento.

 

SMB 3 era similar,

 

con sus ocho mundos diferentes y coloridos.

 

El castillo de Cenicienta se situaba en el centro del parque,

 

conectando todo.

 

 

Era similar en Super Mario Bros. 3.

 

El castillo blanco de cada mundo

 

ayudaba a guiar al jugador,

 

y era la llave para acceder a la siguiente área.

 

Nadie de Nintendo ha confirmado nunca

 

que SMB 3 se inspirase en Disney World,

 

pero las similitudes son interesantes.

 

 

No solo se añadieron

 

nuevos gráficos y niveles a SMB 3.

 

R&D4 añadió también nuevos potenciadores.

 

 

Una de las ideas de Miyamoto era que Mario pudiese montar en un dinosaurio.

 

Lo quería desde el Super Mario Bros. original.

 

Pero los límites técnicos lo impedían.

 

Como compromiso, el director Takashi Tezuka sugirió la idea

 

de que Mario se transformara en animales, más que montarlos.

 

Era una buena idea.

 

Mario podría obtener diferentes potenciadores y trajes

 

que lo transformaran en animales

 

con sus propios poderes y habilidades.

 

La Super Hoja convertía a Mario en mapache

 

y le daba el poder de golpear enemigos con su cola

 

y volar completamente sobre un nivel

 

Pero la habilidad de volar era en un principio demasiado poderosa.

 

El programador jefe Toshihiko Nakago expresó sus preocupaciones.

 

"Si hubiéramos ido con ello, todos los obstáculos

 

y objetos en tierra que hemos conseguido crear

 

hubieran sido un desperdicio", dijo.

 

Pero Tezuka insistió en que se les ocurriera una manera de que funcionase.

 

Como compromiso, los programadores crearon varias restricciones.

 

Mario solo podría volar si despegaba de una "pista de despegue",

 

y aun con ello, el vuelo era temporal.

 

El Traje Rana hacía que Mario saltara más alto y nadara más rápido,

 

pero lo ralentizaba al usarlo en tierra.

 

El Traje Martillo daba a Mario

 

la habilidad de tirar proyectiles-martillo

 

y de protegerse con un caparazón ignífugo.

 

También estaba el Traje Tanuki,

 

basado en un personaje mítico japonés.

 

Era idéntico al traje de mapache,

 

salvo que también permitía a Mario transformarse en estatua,

 

dándole una invencibilidad temporal.

 

A Miyamoto le encantó el Traje Tanuki.

 

"Incluso aunque sabía que para los jugadores

 

de fuera de Japón no tendría sentido, me emocioné tanto con él

 

que lo dejé", dijo

 

En cierto punto, alguien sugirió la idea

 

de Mario transformándose en centauro.

 

Fue rechazada.

 

Con nuevos potenciadores, vino un elenco de enemigos

 

para que Mario los derrotase.

 

Los típicos seguían rondando:

 

Goombas, Koopa Troopas, Hermanos Martillo.

 

Pero había también un montón de nuevas caras:

 

Boom Booms, Spikes, Big Bertha (Boss Bass).

 

Algunos enemigos se basaban

 

en experiencias personales de los trabajadores.

 

Los Chomp Cadenas vinieron de Miyamoto, quien tuvo

 

una mala experiencia con el perro de un vecino de niño.

 

Los Boos se basan supuestamente

 

en la mujer del director Takashi Tezuka,

 

quien era normalmente una mujer tímida

 

pero se enfadaba cuando trabajaba hasta tarde.

 

Los siete Esbirros (Koopalings) se modelaron

 

a imagen de los jóvenes diseñadores de R&D4.

 

Era la manera de Miyamoto de recompensarlos por su duro trabajo.

 

Con los nuevos potenciadores y enemigos, se añadieron nuevos objetos

 

que Mario podría usar a lo largo de su aventura.

 

La idea era dar a los jugadores menos experimentados

 

nuevas oportunidades para superar niveles difíciles.

 

La caja de música dormía a los Hnos. Martillo del mapa,

 

permitiendo que Mario pasara sigilosamente.

 

La flauta, tomada de la saga The Legend of Zelda,

 

permitía a Mario saltar a nuevos mundos.

 

También servía como un medio para manejarse

 

sin tener un sistema de guardado en el cartucho.

 

Un martillo rompía obstáculos y revelaba

 

atajos y secretos en el mapa.

 

La nube de Jugem (nube de Lakitu),

 

permitía a los jugadores saltarse un nivel.

 

El Ala P permitía a Mario volar completamente sobre un nivel,

 

un resto de la idea original del traje mapache.

 

Entre la maraña de cambios, Miyamoto debía asegurar

 

que dos conceptos importantes estuvieran presentes en SMB 3.

 

El primero era que jugadores de cualquier nivel de habilidad

 

disfrutaran del juego.

 

Los nuevos jugadores podían encontrar un montón de vidas extra, monedas,

 

y potenciadores repartidos por los primeros niveles.

 

Había minijuegos y casas de Toad en el mapa general,

 

dando a los jugadores aún más oportunidades para conseguir objetos.

 

En cuanto los niveles se complicaran, los jugadores estarían bien servidos.

 

El segundo concepto importante era hacer un juego

 

que fuera divertido para dos jugadores.

 

En el Super Mario Bros. original,

 

los jugadores se turnaban cuando el otro moría.

 

En SMB 3, los jugadores tomaban su turno

 

tras completar cada nivel,

 

y podían trabajar juntos

 

o bien competir por la máxima puntuación.

 

Se añadió también un modo batalla,

 

basado en el Mario Bros. de recreativas de 1983.

 

Implementar los nuevos movimientos,

 

gráficos, niveles, potenciadores y objetos

 

hizo mella en el equipo de R&D4.

 

Estaban exhaustos.

 

 

Miyamoto a veces trabajaba toda la noche.

 

Vigilaba de cerca a sus diseñadores,

 

y no dudaba en hacerles arreglar hasta el mínimo detalle,

 

incluso si significaba retrasar el juego.

 

"Si hará que el juego sea un poco mejor,

 

Miyamoto-san nunca ha sido reacio

 

a hacer cambios", decía el diseñador Katsuya Eguchi.

 

El director Takashi Tezuka recuerda el esfuerzo.

 

"No funcionaría todo bien y se alargaría", dijo.

 

Quizas nadie se esforzó tanto

 

como el único compositor, Koji Kondo.

 

 

Hace dos años, compuso

 

una de las sintonías más icónicas de la historia de los videojuegos,

 

el tema de Super Mario Bros.

 

Ahora tenía que hacer el tema para Super Mario Bros. 3.

 

Fue una tarea dura.

 

"No podía imaginarme como diferenciarlo

 

del Super Mario Bros. original", dijo.

 

Cuando hizo el primer tema de Super Mario Bros.,

 

Kondo simplemente hizo música que pegara con el juego.

 

Esta vez, se enfocó en el género.

 

Kondo trabajó en mucha percusión,

 

resultando en un sonido reggae.

 

Al fin del desarrollo, había compuesto múltiples canciones,

 

e hizo que Miyamoto y Tezuka le ayudasen a escoger las mejores.

 

En la primavera de 1988, el juego

 

comenzaba a funcionar.

 

 

Miyamoto no iba de farol cuando dijo

 

que quería hacer el Mario definitivo.

 

SMB 3 tomó lo bueno

 

de anteriores entregas y añadió más movimientos,

 

más potenciadores, más personajes y más desafíos.

 

También estaba repleto de secretos.

 

Muchas de las nuevas características, como el desplazamiento automático

 

y el mapa general, se convirtieron en típicos de la franquicia.

 

Al equipo de Research & Development 4

 

le costó más de dos años hacer Super Mario Bros. 3.

 

También fue caro,

 

costando el desarrollo según fuentes 800 000 $.

 

En ese momento, el juego era el mayor título de Famicom,

 

y el más trabajoso, que Nintendo hizo nunca.

 

En comparación, el SMB original

 

ocupaba cerca de 320 kb de memoria.

 

SMB 3 era 10 veces mayor, con 3 Mb (3000 kb).

 

 

Cuando el juego estaba finalmente listo

 

para su lanzamiento, en otoño de 1988,

 

el panorama de los videojuegos en Japón había cambiado.

 

Un nuevo contendiente en el mercado de consolas, el PC Engine,

 

había sido presentado el año anterior por NEC

 

y prometía más colores y mejores gráficos.

 

Superaba en ventas a la Famicom de Nintendo.

 

Otra empresa, Sega, estaba preparada para presentar

 

su nueva consola, la Mega Drive de 16 bits.

 

De golpe y porrazo, Nintendo tenía que montarse al carro

 

y comenzar a desarrollar una nueva consola.

 

El Mario definitivo de Miyamoto

 

tenía que ser más que una secuela.

 

Debía darle el tiempo suficiente a Nintendo para desarrollar

 

su nueva máquina de 16 bits, y demostrar al mundo

 

que aún era la reina de los videojuegos.

 

 

(JAPONÉS) Super Mario Bros. 3 te espera [...]

 

En septiembre de 1988, debutaron las previews en vídeo del juego.

 

Los jugadores no deberían esperar mucho para probarlo ellos mismos.

 

 

El 23 de octubre de 1988,

 

se lanzó Super Mario Bros. 3 en Japón.

 

Estaba claro que el juego era un trabajo de amor.

 

En el manual, se incluía una

 

nota del Research & Development 4.

 

«A los jugadores de Super Mario: Gracias

 

por comprar Super Mario Bros. 3.

 

En respuesta a las peticiones de tantos fans de Mario,

 

SMB 3 es el juego más nuevo

 

de la saga que hemos creado para que sea

 

mucho más divertido que todo lo anterior a él.

 

Hay muchos puzles y trampas

 

a lo largo de tu camino por este viaje.

 

¿Qué maravillas les esperan a Mario y Luigi?

 

Disfruta encontrando la respuesta.

 

Atentamente, el equipo de Mario.»

 

Super Mario Bros. 3 fue un enorme éxito.

 

La revista Famitsu, una publicación popular de Japón,

 

otorgó al juego una puntuación de 35/40, llamándolo "asombroso".

 

La Micom BASIC Magazine alabó también el juego,

 

llamándolo "la culminación del género".

 

A finales de 1988, había escasez de oferta del juego.

 

Durante cinco mese consecutivos, SMB 3 fue

 

el juego de Famicom nr. 1 en ventas del país.

 

La Super Mario-manía volvió a barrer Japón.

 

Las tiendas rebosaban de merchandising.

 

La banda sonora del juego se publicó en CD

 

y casete, que incluía remixes

 

y arreglos de las composiciones de Koji Kondo.

 

Hubo incluso una serie animada.

 

"Amada Anime Series: Super Mario Bros."

 

eran versiones de tres cuentos de hadas

 

con personajes de SMB 3.

 

Mientras los jugadores japoneses disfrutaban

 

de Super Mario Bros. 3,

 

el resto del mundo esperó.

 

 

Tendría que pasar más de un año

 

para que el juego llegara a Norteamérica.

 

Europa tuvo que esperar casi tres años. (1991)

 

La espera condujo a la mayor anticipación

 

por un videojuego, nunca vista.

 

PARTE 2: LA EXPECTACIÓN

 

El éxito de Nintendo no se limitaba a Japón.

 

Tenían también el control

 

del mercado norteamericano de videojuegos.

 

Solo en 1988, Nintendo consiguió unos ingresos de 1700 millones de dólares

 

y tenía un 80% de cuota de mercado,

 

dominando ante las rivales Atari y Sega.

 

En solo dos años desde el lanzamiento

 

de la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 en todo el país,

 

habían vendido más de 10 millones de consolas.

 

«Es una fiebre.

 

Los niños de América dicen: "Esto es genial,

 

tenemos que tener una".

 

Para los niños de este país entre los 8 y 15 años,

 

no tener una Nintendo es como no tener un bate de béisbol.»

 

-- Rick Anguilla, Toy and Business World.

 

El éxito de Nintendo se debía en parte gracias

 

a la popularidad de Super Mario Bros.

 

Nintendo América incluía el juego

 

en su "Control Deck Set".

 

Rápidamente se convirtió en su título más popular.

 

Los fans estaban ansiosos de más.

 

En octubre de 1988, el mismo mes

 

del lanzamiento de Super Mario Bros. 3 en Japón,

 

Nintendo América lanzó Super Mario Bros. 2,

 

solo que no era el mismo juego que la versión japonesa.

 

El director de análisis de producto de Nintendo América,

 

Howard Philips, quien revisaba nuevos juegos de Japón,

 

había famosamente rechazado

 

la versión japonesa de SMB 2.

 

El juego se veía exactamente como el primero,

 

y lo más importante, era demasiado difícil.

 

"Dejé el mando, impresionado porque el sr. Miyamoto

 

hubiera elegido diseñar un juego tan desagradable", dijo.

 

Lanzar el Super Mario Bros. 2 japonés en Norteamérica

 

no sería una decisión inteligente de marketing, así que en vez de eso,

 

Nintendo cogió otro título e hizo de él un juego de Mario.

 

 

"Yume Kōjō: Doki Doki Panic!", lanzado en 1987

 

para el Famicom Disk System, también fue desarrollado

 

por el Research & Development 4.

 

Shigeru Miyamoto había trabajado en el juego,

 

y el diseñador de niveles de Mario 3, Kensuke Tanabe, era el director.

 

Gráficamente, tenía mejor pinta que Super Mario Bros.,

 

y pegaba en el papel de juego atlético,

 

así que Nintendo cambió los personajes

 

de Yume Kōjō: Doki Doki Panic! por Mario y amigos,

 

y lo lanzó como Super Mario Bros. 2

 

en Norteamérica y Europa.

 

Los jugadores ni se dieron cuenta, y SMB 2

 

se convirtió en uno de los regalos más deseados

 

de la temporada navideña de 1988.

 

Se vendió rápido, pero la popularidad no era el único motivo

 

por el que el juego era difícil de encontrar en tiendas.

 

 

Aquel año, toda la industria electrónica

 

sufrió una escasez de chips.

 

Una nueva generación de tecnologías en chips y semiconductores

 

hizo que los fabricantes separaran sus capacidades de producción.

 

Y la demanda era mayor que nunca, con cámaras de vídeo

 

y teléfonos inalámbricos vendiéndose como churros.

 

Los precios despegaron.

 

Chips que valían 2 $ en 1987, ahora costaban de 10 a 12 $ cada uno.

 

A Nintendo le afectó especialmente.

 

Para hacer espacio a nueva oferta, descontinuaron una docena de juegos.

 

Y como Nintendo controlaba

 

todo el proceso de fabricación, juegos de terceros inclusive,

 

ello causó tensiones con sus licenciatarios.

 

Se notificó a las empresas que iban a obtener

 

menos cartuchos que la demanda inicial.

 

Algunas tiendas tomaron partido,

 

subiendo los precios de juegos a 70 $ cada uno.

 

Los analistas estimaron que la oferta de videojuegos

 

sería hasta un 15% menor que la demanda del mercado.

 

Cuando un reportero preguntó a Peter Main,

 

vicepresidente de marketing de Nintendo América,

 

qué estaban haciendo con respecto a la escasez,

 

contestó: "¿A qué te refieres, aparte de esperar y rezar?"

 

Mientras, Nintendo América había recibido

 

una copia de Super Mario Bros. 3 de Japón para su análisis.

 

Internamente, la compañía sabía que el juego sería grande.

 

Cuando el director de análisis de producto Howard Philips

 

revisó el juego, se quedó impresionado.

 

«Para mí, cuando lo vi,

 

pensé que esto no era solo otro juego más,

 

y no es solo un juego divertido y desafiante.

 

Era la quintaesencia de un videojuego, de verdad.» -- Howard Philips.

 

Sin embargo, había que hacer algunos cambios.

 

El juego no era tan complicado como el SMB 2 japonés,

 

pero aun así demostró ser un desafío.

 

En la versión japonesa, cuando Mario era herido

 

con un potenciador, encogía.

 

En la versión norteamericana,

 

Mario aún seguiría grande.

 

También había que cambiar los nombres

 

de los enemigos, sobre todo de los Esbirros.

 

Dayv Brooks, un localizador de Nintendo América

 

y un ávido melómano, nombró a los Esbirros

 

basándose en estrellas del rock.

 

En cuanto vio al Esbirro con pelo suelto,

 

inmediatamente pensó en Ludwig van Beethoven.

 

Así que, Ludwig von Koopa.

 

Wendy O. Koopa se inspiró

 

en la rockera punk Wendy O. Williams.

 

¿Iggy Koopa?

 

La estrella del punk Iggy Pop.

 

El pecoso Roy Koopa tuvo nombre de Roy Orbison.

 

Lemmy Koopa se inspiró

 

en el legendario Lemmy de Motörhead.

 

Pero no todos los Esbirros se basaban en músicos.

 

A Brooks le pareció Morton Koopa Jr. un tipo inteligente,

 

un gran hablador, así que lo nombró

 

a partir del presentador Morton Downey Jr.,

 

un llamado pionero de la telebasura.

 

¿Y qué pasa con Larry Koopa?

 

Ese nombre le pegaba bien.

 

Mientras tanto, los enterados de la industria se preguntaban

 

cuándo vendría a Norteamérica Super Mario Bros. 3,

 

el juego más vendido de Japón.

 

 

Nintendo América estaba en apuros.

 

Con escasez de chips, no podían siquiera

 

hacer suficientes juegos para satisfacer la demanda.

 

Pero los expertos predijeron que la escasez acabaría en 1989.

 

Super Mario Bros. 2 se había recién lanzado

 

y se vendía bien.

 

Sería prematuro vender Super Mario Bros. 3.

 

También estaba la Game Boy, el nuevo sistema portátil de Nintendo.

 

El plan era lanzarlo en verano de 1989.

 

Un juego como Super Mario Bros. 3

 

podía hacer que el lanzamiento de la Game Boy pasara inadvertido.

 

Más que solo esperar, Nintendo tomó partido.

 

Planearon lanzar el juego

 

en el primer trimestre de 1990.

 

Históricamente, el primer trimestre del año

 

traía buenas ventas en software.

 

En 1989, estarían lanzando adelantos sobre el juego

 

y planeando una campaña de publicidad de 25 millones de dólares.

 

En enero de 1989, 700 000 suscriptores de Nintendo Power

 

vieron el primer adelanto de SMB 3.

 

 

Y solo era una frase.

 

En la edición nr. 4, un anuncio

 

de la PlayChoice-10, una máquina de recreativos

 

con títulos seleccionados de Nintendo,

 

mencionó que SMB 3 estaba de camino.

 

Nintendo volvió a adelantarlo en la quinta edición,

 

cuando hablaron sobre un concurso para ganar un viaje

 

al CES de verano en Chicago.

 

Los jugadores escribieron a Nintendo, preguntando por el juego.

 

En la tirada 6 de Nintendo Power, un lector preguntó

 

si Nintendo iba a lanzar Super Mario Bros. 3 alguna vez.

 

La respuesta confirmó que vendría para la PlayChoice-10,

 

pero que "no hay planes inmediatos

 

para lanzarlo para la NES".

 

Pero en la sección "Pak Watch" de la contraportada,

 

donde Nintendo adelantaba lanzamientos futuros,

 

se listaba a SMB 3.

 

En verano de 1989,

 

revistas como Electronic Gaming Monthly y GamePro

 

importaron el juego de Japón y escribieron

 

extensivas previews con capturas.

 

Para muchos jugadores norteamericanos,

 

era el primer contacto con el juego.

 

Pero en julio, algunos ya jugaban a Super Mario Bros. 3.

 

El 15 de julio de 1989, Nintendo lanzó el juego

 

para las máquinas PlayChoice-10.

 

Un ejecutivo de Nintendo América lo llamó

 

"lo mejor que hemos producido nunca para el sistema".

 

Aunque había muchísimas menos PlayChoice-10

 

que NES,

 

parece que la noticia corrió como la pólvora.

 

Operadores informaron que las ganancias de máquinas PlayChoice-10

 

con SMB 3 se triplicaron.

 

Mientras tanto, en Nevada y California,

 

Universal Pictures estaba rodando una película

 

que haría de Super Mario Bros. 3

 

el videojuego más anticipado de todos los tiempos.

 

 

En 1989, el presidente de los estudios Universal,

 

Tom Pollock, estaba en un lío.

 

Su película de los Jetsons (los Supersónicos) no estaría lista

 

a tiempo para las vacaciones.

 

Pollock tuvo que traer

 

una película para todos los públicos alternativa.

 

Durante el año, fue testigo

 

de la popularidad in crescendo de Nintendo,

 

y pensó que una película sobre videojuegos sería un éxito.

 

Entonces, Pollock se reunió con los ejecutivos de marketing de Nintendo Bill White

 

y Peter Main, sugiriendo una colaboración.

 

Su idea era una versión para niños de la película Tommy,

 

un drama-rock sobre un chico inválido

 

que se convierte en un campeón del pinball.

 

Nintendo no podía comprar mejor publicidad.

 

A cambio de usar sus productos en el film,

 

Nintendo recibía una cuota de licencia

 

y la aprobación del guion y las imágenes de juegos que aparecieran.

 

Bill White visitaba con frecuencia el set de rodaje para supervisar la producción.

 

"Todo lo que nos preocupaba era que nos cerciorásemos

 

de que las imágenes de juegos fueran espectaculares", dijo.

 

La película se llamó "The Wizard" (Esp.: El campeón del videojuego, Am. Lat.: El mago de los videojuegos)

 

Contaba la historia de Jimmy, un chico taciturno

 

obsesionado con ir a California.

 

Su hermanastro, Corey, lo saca

 

de un psiquiátrico para llevarlo allí.

 

Por el camino, conocen a una chica llamada Haley.

 

Corey y Haley descubren pronto que Jimmy

 

es muy bueno en los videojuegos.

 

Deciden inscribir a Jimmy

 

en el torneo Video Armageddon en los estudios Universal,

 

y repartirse el premio de 50 000 $.

 

Salen para Los Ángeles, con su familia

 

y un cazarrecompensas detrás.

 

La película estaba llena de productos Nintendo, incluyendo juegos,

 

la línea Nintendo Power, e incluso el Power Glove.

 

"The Wizard" se lanzó el 15 de diciembre de 1989

 

en Norteamérica.

 

Fue golpeada por la crítica.

 

Roger Ebert la llamó "un sutil anuncio

 

de videojuegos de Nintendo y el tour de Universal Studios".

 

Pero eso no le importó a ningún niño que vio la película.

 

El mayor atractivo estaba cerca del final de la película,

 

cuando los participantes del torneo Video Armageddon

 

jugaron a Super Mario Bros. 3.

 

(PELÍCULA) "¡Entonces, os traigo.....!

 

¡Super Mario Bros. 3!"

 

 

 

Para muchos de los que la vieron,

 

era la primera vez que veían

 

un auténtico gameplay de la última secuela de Mario.

 

 

El dominio de Nintendo en el mercado de videojuegos

 

y su arraigo en la cultura pop continuaron creciendo,

 

y no había signos de decreciese.

 

Solo en 1989, Nintendó ganó

 

2700 millones de dólares en concepto de ventas al por menor.

 

La NES era, de nuevo,

 

el juguete nr. 1 por tercer año consecutivo.

 

La consola estaba en el 22% de los hogares estadounidenses,

 

con 20 millones de unidades vendidas.

 

La Game Boy, la nueva consola portátil de Nintendo

 

lanzada con anterioridad ese año, se agotaba en las tiendas.

 

El merchandising explotó

 

con más de 200 productos de Super Mario con licencia.

 

Las secciones "World Of Nintendo"

 

se multiplicaban en las tiendas del país,

 

dedicadas a vender productos Nintendo.

 

La revista Nintendo Power creció hasta los 1,8 millones de suscriptores.

 

La línea Nintendo Power, donde los jugadores podían llamar

 

en busca de consejos, recibía 140 000 llamadas semanales.

 

La emoción alrededor de Nintendo

 

y Super Mario Bros. 3 llegó a su punto álgido.

 

Los niños pedían el juego por Navidad

 

aunque desconocía cuándo saldría.

 

No tendrían que esperar mucho.

 

PARTE 3: EL MEJOR

 

En enero de 1990, los suscriptores de Nintendo Power

 

recibieron una nueva edición.

 

Dentro había algo por lo que habían estado esperando:

 

una preview oficial de Super Mario Bros. 3

 

con un vistazo "entre bastidores"

 

a la creación del juego.

 

La historia mostró que una preview de un juego en Nintendo Power

 

significaba que el lanzamiento no estaba muy lejos.

 

Precisamente al mes siguiente, en febrero,

 

Super Mario Bros. 3 apareció en las tiendas

 

de toda Norteamérica al PVP de 49,95 $.

 

Hubo un descontrol.

 

En dos días, vendieron 250 000 unidades,

 

se agotó en todas partes.

 

Nintendo no podía fabricar el juego lo suficientemente rápido.

 

Las tiendas liquidaban su existencia en un día.

 

"Cualquier otra llamada que recibimos es sobre Nintendo

 

y Super Mario Bros. 3",

 

dijo un empleado de Toys 'R' Us en Chicago.

 

"Nunca sabremos cuando nos llegará,

 

pero se nos agotará tan pronto como lo tengamos".

 

Pero para cualquiera que consiguiera encontrar una copia, era simplemente

 

uno de los mejores juegos que Nintendo había lanzado jamás.

 

«Si SMB 3 fuera una película

 

en lugar de un videojuego, sería favorito para un Óscar».

 

-- Paul Franklin, The Courier News.

 

(ANUNCIO) ¡Mario, Mario, Mario!

 

¡Mario, Mario, Mario, Mario....!

 

¡Mario, Mario, Mario, Mario....!

 

En marzo, se habían vendido 700 000 copias.

 

Nintendo América destapó

 

su campaña publicitaria de 25 millones de dólares.

 

 

Se emitieron anuncios de televisión.

 

Había promociones conjuntas con otras compañías,

 

incluyendo Popsicle y Nabisco.

 

La NBC emitió un programa de dibujos los sábados por la mañana:

 

"Las aventuras de Super Mario Bros. 3".

 

McDonald's sacó un set de juguetes Happy Meal.

 

Mientras, la competencia lanzaba nuevas consolas al mercado.

 

Sega había recién lanzado su Genesis de 16 bits (Mega Drive en Europa)

 

Y tras el éxito de la PC Engine en Japón,

 

NEC la traería a Norteamérica con el nombre de TurboGrafx-16.

 

Pero no importaba.

 

Super Mario Bros. 3 era de lo que todos hablaban en el recreo.

 

Los niños presumían de lo lejos que podían llegar en el juego

 

o compartían secretos sobre dónde encontrar

 

Flautas mágicas y nuevos potenciadores.

 

El juego era tan grande y tenía tantos secretos

 

que Nintendo se preocupó de que pudiera abrumar a algunos jugadores.

 

Así que en julio de 1990, Nintendo Power sacó

 

su primera guía completa de estrategia,

 

con Super Mario Bros. 3

 

Tenía mapas de cada nivel, información de cada enemigo

 

y potenciador, y revelaba cada secreto del juego.

 

Fans de todas las edades se obsesionaron con el juego.

 

A un grupo de adultos les gustó tanto el juego,

 

que lo portaron a PC y se lo enviaron

 

a Nintendo, esperando obtener una licencia.

 

Nintendo se impresionó, pero rechazó la oferta.

 

Eso no afectó al equipo de John Carmack,

 

John Romero, Tom Hall y Adrian Carmack.

 

Se emocionaron con su trabajo

 

y al año siguiente formaron una empresa, id Software,

 

los creadores de Wolfenstein 3D y Doom.

 

Por 1991, Nintendo había vendido más de 8 millones de copias

 

del juego en Norteamérica,

 

ganando más de 400 millones de dólares.

 

Si SMB 3 hubiera sido un negocio,

 

hubiera estado entre las 10 mejores compañías jugueteras de los EE.UU.

 

Por entonces, era

 

el videojuego separado más vendido nunca.

 

 

Antes de Super Mario Bros. 3, la crítica se preguntaba

 

si Nintendo solo era una locura pasajera.

 

El presidente de Electronic Arts, Trip Hawkins,

 

comparó a la NES con las Muñecas Repollo. (Cabbage Patch)

 

"Es un juguete, y significa que es solo una moda", dijo.

 

Tras Super Mario Bros. 3, no habría margen de dudas.

 

Nintendo cosechó sus beneficios.

 

Sus ingresos estimados para 1990 eran de 3400 millones de dólares,

 

lo cual les daba una aplastante cuota de mercado del 88%.

 

En 1991, superaron a Toyota

 

como la compañía más exitosa de Japón.

 

Nintendo ganaba millón y medio de dólares por empleado.

 

Pero no todo era un camino de rosas.

 

La Comisión Federal de Comercio de EE.UU. investigó a Nintendo

 

por supuestas infracciones de las leyes antimonopolio,

 

como acordar precios, para batir a la competencia.

 

Nintendo negó cualquier práctica ilícita, pero fue multada con

 

25 millones de dólares en forma de descuentos para los consumidores.

 

La multa tomó la forma de un vale de 5 dólares

 

que los consumidores solo podían usar para comprar más juegos de Nintendo.

 

En total, Super Mario Bros. 3 vendió

 

más de 17 millones de copias en todo el mundo.

 

Contando relanzamientos,

 

las ventas se estiman en más de 30 millones de unidades.

 

Pero la cosa era algo más que dinero y cifras de ventas.

 

Super Mario Bros. 3 demostró

 

que los videojuegos domésticos podían ser grandes y variadas aventuras,

 

e incluso mejor que los juegos de recreativas.

 

Shigeru Miyamoto se convirtió en una superestrella.

 

Famosos como Paul McCartney

 

y Steven Spielberg volaron a Japón para conocerle.

 

Su éxito le aseguró producir

 

o dirigir todos los grandes lanzamientos de Nintendo.

 

Su siguiente juego de Mario, Super Mario World,

 

fue un título de lanzamiento para la nueva máquina de 16 bits de Nintendo,

 

la Super Famicom, también conocida como la Super Nintendo.

 

Con el nuevo hardware, Miyamoto pudo por fin

 

hacer que su héroe montara a lomos de un dinosaurio.

 

Otras empresas se percataron del éxito de Mario.

 

Sega vio el poder de una franquicia insignia

 

y comenzó a trabajar en su propia mascota, Sonic the Hedgehog.

 

Su debut en 1991 en la Mega Drive/Genesis

 

creó una competencia legítima en el mercado

 

que derivó en la guerra de consolas de los 90.

 

Incluso tras el lanzamiento de la Super Nintendo,

 

la gente seguía jugando y disfrutando de Super Mario Bros. 3.

 

Estuvo entre los 20 mejores juegos de NES según Nintendo Power

 

hasta la descontinuación de la consola en 1995.

 

Cuando la gente mira atrás a sus recuerdos de infancia

 

con la NES, casi siempre, seguramente,

 

les viene a la cabeza Super Mario Bros. 3, un juego que se sentía nostálgico

 

y revolucionario al mismo tiempo,

 

un juego a la altura de sus expectativas sin precedentes.

 

TAKASHI TEZUKA considera SMB 3 su primera obra cumbre.

 

Continúa supervisando o produciendo prácticamente cualquier título de Mario en Nintendo.

 

TOSHIHIKO NAKAGO es ahora presidente de Systems Research & Development, una compañía que ayuda a programar juegos de Nintendo.

 

Nakago, Tezuka y Miyamoto son conocidos internamente en Nintendo como un "dream team".

 

KOJI KONDO consideró al tema de SMB 3 la pieza de música más difícil que nunca ha escrito.

 

Aún es compositor en Nintendo.

 

KENSUKE TANABE ayudó a escribir las historias de muchos títulos de Zelda, incluyendo Ocarina of Time.

 

Aún es productor en Nintendo, trabajando directamente con desarrolladores externos.

 

KAZUAKI MORITA ayudó a programar muchos clásicos de Nintendo.

 

Actualmente es director en SRD, y trabaja sobre todo en la saga The Legend of Zelda.

 

KATSUYA EGUCHI dirigió su primer juego, Star Fox, en 1993.

 

En 2001, creó Animal Crossing, actualmente una de las franquicias más exitosas de Nintendo.

 

HIDEKI KONNO codirigió Super Mario Kart, que se convirtió en uno de los juegos más vendidos de la Super Nintendo.

 

Actualmente supervisa el desarrollo de juegos para móviles en Nintendo.

 

HOWARD PHILIPS abandonó Nintendo en 1991 para unirse a LucasArts.

 

Super Mario Bros. 3 fue su segundo juego más valorado en su etapa en Nintendo.

 

No revelará su juego más valorado.

 

PETER MAIN dejó Nintendo América en 2002.

 

El presidente de Nintendo América, Minoru Arakawa, cita: "Sin él, no hubiéramos conseguido este éxito fenomenal".

 

SHIGERU MIYAMOTO es actualmente director representativo de Nintendo.

 

Se le considera uno de los mayores diseñadores de juegos de todos los tiempos.

 

Traducción y subtitulado / Translation and subtitles: Chema Poblador, Spain 2019

 

La animación isométrica de Mario y el dibujo del centauro son recreaciones artísticas para este documental.

 

"The Wizard" y derivados son propiedad de Universal Pictures.

 

Parte de los fondos de Gaming Historian

 

provienen de patrocinadores de Patreon.

 

Gracias.

 

[Arreglo musical del tema de ‘Grass Land’ de SMB. 3 de fondo]

 

Era Febrero de 1990.

 

Nintendo of America estaba por lanzar

 

uno de sus juegos más grandes de todos los tiempos:

 

Super Mario Bros. 3.

 

Y la emoción era auténtica.

 

Super Mario Bros. 3 había salido un año y medio antes en Japón

 

e incluso en un tiempo antes de internet,

 

los jugadores norteamericanos lo sabían todo.

 

A lo largo de 1989, revistas publicaron vistas previas y avances.

 

Una gran película de Hollywood mostró el juego.

 

Incluso algunas tiendas vendieron versiones importadas o piratas del juego.

 

Pero Super Mario Bros. 3 era más que solo otro juego en la saga,

 

probó que Nintendo y Super Mario Bros. no eran una moda pasajera,

 

y que incluso, con la competencia de otras compañías,

 

Nintendo era todavía el rey de los videojuegos.

 

Esta es la historia de cómo un juego capturó los corazones

 

y las mentes de toda una generación de jugadores.

 

Esta es la historia de Super Mario Bros. 3.

 

[Sonidos y música de Super Mario Bros. de fondo]

 

- Parte 1 - [ El Mario Definitivo ]

 

Para el Verano de 1986,

 

la fiebre de Mario había llegado oficialmente a Japón.

 

[Arreglo musical del tema ‘Athletic’ de Super Mario World de fondo]

 

Super Mario Bros. de Nintendo para el Famicom fue un éxito en ventas,

 

vendiendo más de 3 Millones de copias.

 

El libro más vendido del país fué:

 

“Super Mario Bros. – The Complete Stragedy Guide”,

 

el cual contenía consejos y trucos sobre cómo ganar el juego.

 

El tema musical de Super Mario Bros. se le dio letra y fue lanzado como un disco sencillo:

 

“Go Go Mario.”

 

[♫ “Una vez más, hoy Mario parte alegremente”♫]

 

[♫ “para salvar a la Princesa Peach". ♫]

 

Super Mario Bros. cambió hasta la percepción pública de Japón acerca de los Videojuegos:

 

“Antes de que saliera Super Mario Bros.,

 

incluso el Parlamento había abordado el asunto sobre la influencia de los videojuegos en los niños

 

y los artículos de los periódicos fueron en su mayoría negativos.

 

Pero la atmósfera alegre de Mario,

 

quitó esa hostilidad contra el Famicom".

 

- Hiroshi Imanishi, Nintendo.

 

El juego causó una explosión en ventas para el Famicom.

 

Para Junio de 1986, Nintendo había vendido más de 6.5 Millones de unidades.

 

1 de cada 5 hogares en Japón tenían un Famicom.

 

Y con el enorme éxito de Super Mario Bros.,

 

una secuela nunca estuvo en duda.

 

Super Mario Bros. 2 fue lanzado el 3 de Junio de 1986,

 

menos de un año después del début del juego original.

 

Nintendo lanzó el juego para el Famicom Disk System,

 

un nuevo complemento para el Famicom que permitía jugar juegos usando disquetes patentados.

 

Eran más baratos que los cartuchos convencionales y podían almacenar más datos.

 

Nintendo esperaba que todos sus futuros grandes lanzamientos

 

fueran destinados para el Disk System.

 

Una secuela del juego más popular del Famicom podrían ayudar a impulsar las ventas.

 

Super Mario Bros. 2 se convertiría en el juego más vendido del Disk System,

 

vendiendo más de 2 Millones de unidades,

 

pero los jugadores tenían hambre de más.

 

El juego se sentía más como un Pack de Expansión que una auténtica secuela,

 

Super Mario Bros. y Super Mario Bros. 2 eran casi idénticos visualmente.

 

Y también era un juego extremadamente difícil,

 

lo cual fue un disgusto para los nuevos jugadores.

 

Nintendo incluso lo promocionó como tal,

 

estampando una etiqueta “For Super Players” (Para Super Jugadores) en el empaque del juego.

 

Y los jugadores no eran los únicos que querían una verdadera secuela,

 

Research and Development 4 (Investigación y Desarrollo, sección 4),

 

el equipo tras los 2 primeros juegos de Super Mario Bros.,

 

estaban listos para entregarle al Famicom el juego de Mario definitivo.

 

Así que Nintendo se puso manos a la obra.

 

Un equipo de más de 10 personas de R&D4 serían responsables de hacer Super Mario Bros. 3:

 

Su líder era Shigeru Miyamoto.

 

Si Mario era el Mickey Mouse de Nintendo,

 

Shigeru Miyamoto era el Walt Disney de Nintendo.

 

Creó a Mario en 1981, y desde entonces, había visto a su personaje convertirse en la cara de la compañía.

 

Miyamoto dio un paso atrás durante el desarrollo de Super Mario Bros. 2,

 

se había convertido en padre recientemente

 

y estaba involucrado en muchos proyectos.

 

Pero ahora estaba listo para zambullirse completamente en una secuela.

 

Supervisaría casi todos los aspectos de la creación de Super Mario Bros. 3

 

La mano derecha de Miyamoto, Takashi Tezuka,

 

fue nombrado director del juego.

 

Tezuka se unió a Nintendo 2 años antes a la edad de 24 años

 

y fue fundamental para el diseño y desarrollo de Super Mario Bros. y The Legend of Zelda.

 

Después de eso, Tezuka recibió su primer trabajo como Director en Super Mario Bros. 2.

 

Su trabajo en ese juego, mientras se enfrentaba a una fecha límite apretada,

 

demostró que estaba más que capacitado para hacer el trabajo.

 

Pero Super Mario Bros. 3 probaría ser un reto.

 

Toshihiko Nakago era el programador principal.

 

Empezó su carrera en Nintendo en 1983

 

porteando juegos de las máquinas recreativas (Arcade) al Famicom.

 

Nakago demostró ser invaluable cuando ayudó a Miyamoto y Tezuka hacer realidad sus ideas

 

conforme programaba The Legend of Zelda y Super Mario Bros.

 

Trabajando solo como el compositor, estaba Koji Kondo.

 

Antes de que Kondo llegara a Nintendo en 1984,

 

la música y los efectos de sonido eran manejados por los programadores.

 

Kondo fue uno de los primeros miembros del personal especializados en la música de Nintendo.

 

Sumado a los veteranos, R&D4 tenía un grupo de Diseñadores y Programadores jóvenes

 

ansiosos de demostrar su utilidad.

 

Entre ellos, estaba Kensuke Tanabe,

 

un nuevo empleado que no solo tuvo que diseñar niveles para Super Mario Bros. 3,

 

sino también dirigir su propio juego:

 

Yume Kōjō: Doki Doki Panic.

 

Kazuaki Morita, un genio de la programación

 

que ayudó a programar Super Mario Bros. a la edad de 19 años.

 

Katsuya Eguchi, un artista gráfico cuyo talento llamó la atención de Miyamoto.

 

Fue contratado como un diseñador de niveles.

 

Y Hideki Konno, un diseñador que había soñado con trabajar en Nintendo

 

desde que comenzó a jugar juegos de Famicom.

 

Con este equipo reunido,

 

Miyamoto podría comenzar con la producción de su juego de Mario definitivo.

 

Pero hacer este nuevo juego requeriría mucho poder.

 

Afortunadamente, estaba disponible.

 

A pesar de que Super Mario Bros. 2 fuera lanzado en el Famicom Disk System,

 

nuevos avances en la tecnología de los cartuchos rápidamente hicieron obsoleto al Disk System.

 

Los precios de los chips estaban empezando a bajar

 

y la capacidades de almacenamiento, a incrementar.

 

Nintendo desarrolló chips MMC internamente, controladores de memoria múltiple,

 

los cuales expandieron enormemente las capacidades del Famicom.

 

Los desarrolladores hicieron juegos que nunca se pensaron posibles.

 

Miyamoto reconoció a los chips MMC como la razón de que el Famicom durara tanto tiempo en el mercado.

 

Super Mario Bros. 3 utilizó el Chip MMC3,

 

el cual permitía mejores gráficos, pantalla dividida, desplazamiento en diagonal y más memoria.

 

Con este nuevo poder, Tezuka estaba listo para probar hacer algo nuevo:

 

“Hicimos Super Mario Bros. 2

 

cambiando la dificultad del juego original y el diseño de los niveles,

 

pero no podíamos volver a repetir,

 

así que quería cambiar todo".

 

- Takashi Tezuka.

 

La primera nueva idea de R&D4 era cambiar la perspectiva.

 

Experimentaron haciendo un juego de Mario usando una vista isométrica,

 

pero Miyamoto no eran fan de ello:

 

“Con una vista cenital en diagonal,

 

pierdes la capacidad de calibrar bien la distancia con el suelo.

 

Así que le dije que el desarrollo iba a ser difícil”, dijo.

 

R&D4 desechó la idea y regresó a la habitual vista lateral.

 

Nintendo se refiere a los juegos de Super Mario como juegos atléticos,

 

juegos donde los jugadores pueden moverse libremente, correr rápido y saltar alto.

 

"Es el tipo de juegos que son fácilmente accesibles para jugadores jóvenes e inexpertos.

 

Pero también pueden ser jugados por fanáticos experimentados sin cansarse de ello”, dijo Miyamoto.

 

Esta filosofía de juego resurgió.

 

R&D4 comenzó una lluvia de ideas con nuevas formas

 

para hacer que Super Mario se sintiera incluso más atlético.

 

Permitirían a Mario deslizarse por colinas,

 

agarrar y patear objetos

 

e incluso volar por el aire.

 

Mario no podía quedarse igual gráficamente.

 

Los 2 primeros juegos de Super Mario se veían muy similares.

 

Entonces R&D4 le dio al universo de Mario un completo cambio de imagen.

 

Nada de los 2 primeros juegos se llevó.

 

Cada personaje, enemigo, objeto y entorno era nuevo.

 

Había una bonita estética en los gráficos,

 

gracias al director Takashi Tezuka.

 

En el juego anterior de Mario, añadió ojos a muchos objetos.

 

Hizo lo mismo en Super Mario Bros. 3.

 

“Él quería agregar ojos a casi todo”, dijo el Diseñador Katsuya Eguchi.

 

Los colores eran brillantes y variados.

 

Los árboles y arbustos bailaban en pantalla.

 

Los visuales tenían un elemento teatral,

 

un telón se levantaba para introducir el juego.

 

Plataformas colgantes y bloques atornillados en el fondo parecían piezas de una escenografía.

 

Mario terminaba cada nivel saliendo del escenario.

 

R&D4 colocó esos nuevos elementos visuales en un mundo completamente nuevo.

 

Ahora Mario tenía ocho nuevas áreas por explorar,

 

cada una con sus propios temas visuales:

 

[ Grass Land ]

 

[ Desert Hills ]

 

[ Ocean Side ]

 

[ Big Island ]

 

[ The Sky ]

 

[ Ice Land ]

 

[ Pipe Maze ]

 

[ The Castle of Koopa ]

 

Los diseñadores producían niveles sin parar.

 

Hideki Konno no recuerda la experiencia con cariño:

 

“Usábamos papel de calco sobre el papel cuadriculado

 

y dibujábamos laboriosamente los niveles cada día”, recuerda.

 

Una vez terminado, los diseñadores llevaban sus niveles a la sala de mapas,

 

una gran sala estrecha donde los programadores tomaban las hojas de papel cuadriculado

 

y programaban los datos del mapa.

 

Era un largo proceso.

 

Los diseñadores tenían que esperar un día entero antes de ver su creación en pantalla,

 

y aun así, había muchos errores que resolver.

 

Para conectar todos los niveles, el equipo de desarrollo añadió un mapamundi.

 

Los niveles ya no eran jugados más en un orden lineal.

 

Ahora, los jugadores podían elegir su propio camino al final de cada área.

 

¿Cómo Research & Development 4 concibió esos nuevos mundos?

 

Puede que hayan obtenido inspiración del lugar más mágico en la Tierra.

 

En 1987, Shigeru Miyamoto y otros miembros del equipo

 

de Research & Development 4 necesitaban inspiración,

 

entonces tomaron un viaje hacia los Estados Unidos.

 

Visitaron varios lugares, incluyendo la ciudad de Nueva York, San Francisco

 

y Disney World en Orlando, Florida.

 

Disney World tenía varias áreas únicas y se sentía como una tierra de cuento de hadas.

 

Super Mario Bros. 3 era similar, con sus ocho coloridos y diferentes mundos.

 

El castillo de Cenicienta se asentaba en el centro del parque, conectando todo junto.

 

Era similar en Super Mario Bros. 3.

 

El castillo blanco en cada mundo guiaba al jugador a seguir adelante

 

y era la clave para pasar a la siguiente área.

 

Nadie en Nintendo ha confirmado que Super Mario Bros. 3 fue inspirado por Disney World,

 

pero las similitudes son interesantes.

 

Nuevos gráficos y niveles no fueron la única adición a Super Mario Bros. 3,

 

R&D4 también añadió nuevos potenciadores.

 

Una de las ideas de Miyamoto era hacer que Mario montara un dinosaurio,

 

Había querido hacerlo desde el Super Mario Bros. original,

 

pero las limitaciones técnicas no permitieron que ocurriera.

 

Para arreglarlo, el director Takashi Tezuka propuso la idea de Mario

 

transformándose en animales en vez de montarlos.

 

Fue una buena idea.

 

Mario podría obtener diferentes potenciadores y trajes que lo transformarían en animales

 

con sus propios poderes y habilidades.

 

La Super Hoja convertía a Mario en un mapache y darle el poder de golpear enemigos con su cola

 

y volar completamente sobre un nivel.

 

Pero inicialmente, la habilidad de volar era muy poderosa.

 

El programador principal, Toshihiko Nakago, expresó sus preocupaciones:

 

“Si hubiéramos optado por ese enfoque, todos los obstáculos y objetos terrestres creados

 

se habrían desaprovechado”, dijo.

 

Pero Tezuka insistía que llegaran a una manera de hacerlo funcionar.

 

Para arreglarlo, los programadores hicieron algunas restricciones

 

Mario solo podría volar si toma impulso, y aun así, el vuelo sería temporal.

 

El Traje de Rana le permitía a Mario saltar más alto y nadar más rápido

 

pero lo desaceleraba cuando usaba el traje en la tierra.

 

El Traje de Martillo le daba a Mario la capacidad de lanzar proyectiles de martillo

 

y protegerse con un caparazón a prueba de fuego.

 

También estaba el Traje de Tanooki, basado en la mítica criatura japonesa.

 

Era idéntica al Traje de Mapache, excepto que también permitía a Mario transformarse en una estatua,

 

concediéndole invencibilidad temporal.

 

Miyamoto le encantó el Traje de Tanooki:

 

“Aunque sabía que no tendría sentido para los jugadores no japoneses,

 

estaba tan emocionado sobre ello que lo dejé pasar”, dijo.

 

En algún punto, alguien sugirió la idea de Mario convirtiéndose en un centauro.

 

Fue rechazado.

 

Con nuevos potenciadores venía un reparto de enemigos para que Mario derrotara.

 

Los enemigos de siempre todavía seguían por ahí:

 

[ Goombas ]

 

[ Koopa Troopas ]

 

[ Hermanos Martillo ]

 

Pero también había un montón de caras nuevas:

 

[ Boom Booms ]

 

[ Spikes ]

 

[ Big Bertha ]

 

Algunos enemigos fueron basados en experiencias personales de los miembros del personal.

 

Los Chomp Cadenas vinieron de Miyamoto,

 

quien tuvo una mala experiencia con el perro del vecino de niño.

 

Los Boos fueron basados supuestamente en la esposa del director Takashi Tezuka,

 

quien normalmente era una mujer tímida pero que se enojaba cuando él trabajaba hasta tarde.

 

Los 7 Koopalings fueron creados por los jóvenes diseñadores de Research and Development 4.

 

Fue la manera de Miyamoto de recompensar su duro trabajo.

 

Sumado a nuevos potenciadores y enemigos, nuevos objetos fueron añadidos

 

para que Mario pudiera usar durante su aventura.

 

La idea era darle a los jugadores menos experimentados más oportunidades de superar niveles difíciles.

 

La Caja Musical pone a dormir a los Hermanos Martillo de la pantalla del mapa,

 

permitiéndole a Mario escabullirse.

 

Una Flauta Mágica, tomada de la serie The Legend of Zelda,

 

deja que Mario avance a nuevos mundos.

 

También sirvió como una manera de evitar que hubiera una batería de guardado en el cartucho.

 

Un martillo rompía obstáculos y revelaba atajos y secretos en el mapa.

 

La ‘Jugem’s Cloud’, también conocida como la Nube de Lakitu,

 

permitía a los jugadores saltarse un nivel.

 

La ‘P-Wing’ permitía a Mario volar todo un nivel por completo,

 

un vestigio de la idea original del Traje de Mapache.

 

Finalizada la avalancha de cambios, Miyamoto se tenía que asegurar

 

que 2 conceptos importantes estuvieran presentes en Super Mario Bros. 3.

 

El primero era que los jugadores de todos los niveles de habilidad pudiesen disfrutar del juego.

 

Nuevos jugadores podrían encontrar muchas vidas extras, monedas y potenciadores

 

dispersos a través de los primeros niveles.

 

Los minijuegos y las casas de Toad fueron colocados en el mapamundi

 

dándoles a los jugadores más oportunidades de conseguir objetos.

 

A medida de que los niveles se hacían más complicados, los jugadores estarían bien abastecidos.

 

El 2do concepto importante era hacer un juego que fuese divertido de jugar para 2 personas.

 

En el Super Mario Bros. original, los jugadores se turnaban cuando el otro perdía.

 

En Super Mario Bros. 3, los jugadores se turnaban luego de que cada nivel fuese completado

 

y podían trabajar juntos o competir por la mayor puntuación.

 

También se añadió un Modo de Batalla,

 

basado en el juego de máquinas recreativas (Arcade) de 1983, Mario Bros.

 

Implementar todos los nuevos movimientos, gráficos, niveles, potenciadores y objetos

 

pasó factura en todo el personal de R&D4.

 

Estaban exhaustos.

 

Miyamoto a veces trabajaba toda la noche.

 

Vigilaba de cerca a sus diseñadores

 

y no tenía miedo de hacer que arreglaran el más mínimo detalle, incluso si significaba retrasar el juego.

 

“Si un detalle va a ser que el juego sea mejor, Miyamoto no dudará sobre la necesidad de modificarlo”,

 

dijo el diseñador Katsuya Eguchi.

 

El director Takashi Tezuka recuerda la lucha:

 

“Aquello no acababa de tomar forma, y se iba alargando”, dijo

 

Quizás nadie se esforzó más que el único compositor, Koji Kondo.

 

2 años antes, compuso una de las melodías más icónicas en la historia de los videojuegos:

 

El tema de Super Mario Bros.

 

Ahora tenía que hacer el tema para Super Mario Bros. 3,

 

era un acto difícil de seguir.

 

“No se me ocurría cómo cambiarlo desde el Super Mario Bros. original”, dijo.

 

Cuando hizo el primer tema de Super Mario Bros.,

 

Kondo hizo música que simplemente siguiera la jugabilidad.

 

Esta ocasión, se centró en el género.

 

Kondo trabajó mucho en la percusión, resultando en un sonido de reggae.

 

Al final del desarrollo, había compuesto múltiples canciones

 

y Miyamoto y Tezuka tuvieron que ayudarle a escoger los mejores.

 

Para la Primavera de 1988,

 

el juego estaba empezando finalmente a tomar forma.

 

[Arreglo musical del tema principal de Super Mario Bros. 3 de fondo]

 

Miyamoto no estaba bromeando cuando dijo que quería hacer el juego de Mario definitivo

 

Super Mario Bros. 3 tomó lo mejor de las entregas anteriores y añadió más movimientos,

 

más potenciadores, más personajes y más desafíos.

 

También estaba repleto de secretos.

 

Muchos de los nuevos elementos, como el desplazamiento automático y el mapamundi,

 

se convertirían en algo común en la franquicia.

 

Le tomaría más de 2 años a Research and Development 4 hacer Super Mario Bros. 3

 

además fue costoso, costando $800 mil para desarrollarse, según consta.

 

En aquel entonces, el juego fue el título de Famicom más grande y arduo que Nintendo haya hecho.

 

En comparación, el Super Mario Bros. original ocupó alrededor de 320 kilobits de memoria,

 

Super Mario Bros. 3 era 10 veces más grande, de 3 megabits.

 

Cuando el juego estaba listo para ser lanzado en el Otoño de 1988,

 

el panorama de los videojuegos había cambiado en Japón.

 

Un nuevo aspirante en el mercado de consolas, el PC Engine,

 

fue introducido un año antes por NEC y presumía de más colores y mejores gráficos.

 

Estaba vendiendo más que el Famicom de Nintendo.

 

Otra compañía, Sega, se preparaba para introducir su nueva consola:

 

La Mega Drive de 16-bits.

 

De repente, Nintendo tenía que ponerse al día y empezar a desarrollar su propia nueva consola.

 

El juego de Mario definitivo de Miyamoto tenía que ser más que solo una secuela,

 

tenía que darle tiempo a Nintendo para desarrollar su nueva máquina de 16-bits

 

y demostrarle al mundo de que ellos todavía eran el rey de los videojuegos.

 

Vistas previas en video del juego debutaron en Septiembre de 1988.

 

Los jugadores no tendrían que esperar tanto para probarlo por ellos mismos.

 

El 3 de Octubre de 1988,

 

Super Mario Bros. 3 fue lanzado en Japón.

 

Estaba claro que el juego era una obra de amor.

 

Dentro del manual venía incluído una nota de Research and Development 4:

 

“Para los jugadores de Super Mario:

 

Gracias por comprar Super Mario Bros. 3.

 

En respuesta a las peticiones de muchos fans de Mario,

 

Super Mario Bros. 3 es el nuevo juego de la serie que hemos creado

 

para ser mucho más entrenido que todo lo anterior.

 

Hay muchos rompecabezas y trampas a lo largo de tu camino durante este viaje.

 

¿Qué tipo de maravillas les esperan a Mario y Luigi?

 

Disfruta encontrando la respuesta.

 

Atentamente:

 

- ‘The Mario's Staff'".

 

Super Mario Bros. 3 fue un enorme éxito.

 

La revista Famitsu, una publicación popular en Japón, le dio al juego un puntaje de 35/40, y lo llamó:

 

"increíble".

 

La revista Micom BASIC también elogió al juego, llamándolo:

 

“La culminación del género.”

 

Para finales de 1988, había una escasez de suministros del juego.

 

Por 5 meses consecutivos, Super Mario Bros. 3 fue el juego de Famicom más vendido en el país.

 

La manía de Super Mario arrasó de nuevo en Japón.

 

La mercancía inundó las tiendas.

 

La banda sonora del juego fue lanzado en CD y casete,

 

el cual incluía remixes y versiones arregladas de las composiciones de Koji Kondo.

 

Incluso hubo una caricatura:

 

“The Amada Anime Series: Super Mario Bros.”

 

El cual era una narración de 3 cuentos de hadas,

 

protagonizado por personajes de Super Mario Bros. 3.

 

Mientras los jugadores japoneses disfrutaban todo de Super Mario Bros. 3,

 

el resto del mundo tuvo que esperar.

 

Tomaría más de un año para que el juego llegara a Norte América,

 

Europa tuvo que esperar casi 3 años.

 

Toda esa espera llevó a la mayor anticipación para un videojuego.

 

- Parte 2 - [ El Hype ]

 

Nintendo no solo estaba teniendo éxito en Japón.

 

También tenían el control del mercado norteamericano de los videojuegos.

 

Sólo en 1988, Nintendo alcanzó los $1.7 mil Millones en ganancias

 

y tenía un increíble 80% de participación del mercado de los videojuegos,

 

dominando a sus rivales Atari y Sega.

 

En poco más de 2 años desde el lanzamiento del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 a nivel nacional,

 

habían vendido más de 10 Millones de consolas.

 

“Es una obsesión.

 

Los niños en América dicen ‘Esto es genial, debemos tener uno'.

 

Para los chicos en este país entre las edades de 8 y 15 años,

 

no tener una Nintendo es como no tener un bate de béisbol".

 

- Rick Anguilla, Toy and Bussiness World.

 

El éxito de Nintendo fue en gran parte gracias a la popularidad de Super Mario Bros.

 

Nintendo of America empacó el juego con su Control Deck Set.

 

Rápidamente se convirtió en su título más popular.

 

Los fans estaban ansiosos de más.

 

En Octubre de 1988,

 

el mismo mes en que Super Mario Bros. 3 fue lanzado en Japón,

 

Nintendo of America lanzó Super Mario Bros. 2,

 

solo que... No era el mismo que la versión japonesa.

 

El Gerente de análisis de productos de Nintendo of America, Howard Phillips,

 

quien reseñaba los nuevos juegos de Japón,

 

había rechazado la versión japonesa de Super Mario Bros. 2, como es bien sabido.

 

El juego lucía exactamente como el primero y, lo que es más importante, era muy difícil.

 

“Dejé mi control, pasmado de que el Sr. Miyamoto había elegido diseñar un juego tan difícil”, dijo.

 

Lanzar el Super Mario Bros. 2 japonés en Norte América, no sería una decisión sensata de mercado,

 

así que en su lugar, Nintendo tomó otro título y lo convirtió en un juego de Mario.

 

[Arreglo musical de la selección de personajes de SMB. 2/Yume Kōjō: Doki Doki Panic]

 

Yume Kōjō: Doki Doki Panic, lanzado en 1987 para el Famicom Disk System,

 

también fue desarrollado por Research & Development 4.

 

Shigeru Miyamoto había trabajado en él

 

y el diseñador de niveles de Super Mario Bros. 3,

 

Kensuke Tanabe, era el Director.

 

Gráfcamente, se veía mejor que Super Mario Bros. y encajaba con el molde de un juego atlético.

 

Así que Nintendo reemplazó los personajes de Yume Kōjō: Doki Doki Panic con Mario y sus amigos

 

y lo lanzó como Super Mario Bros. 2 en Norte América y Europa

 

Los jugadores no se dieron cuenta y Super Mario Bros. 2

 

se convirtió en uno de los artículos más populares de la temporada navideña de 1988.

 

Se vendió rápido, pero la popularidad no era la única razón

 

por la que el juego era difícil de encontrar en tiendas.

 

Ese año, toda la industria de electrónicos sufrió una escasez de chips.

 

Una nueva generación de semiconductores y tecnología de chip

 

provocó que los fabricantes dividieran su capacidad de producción.

 

Y la demanda era más alta que nunca, con videocámaras

 

y teléfonos portátiles vendiéndose como pan caliente.

 

Los precios se dispararon.

 

Los chips que costaban $2 en 1987, ahora costaban de $10 a $12 c/u.

 

Nintendo fue gravemente afectado.

 

Para liberar el suministro, descontinuaron una docena de juegos.

 

Y como Nintendo controlaba toda la manufacturación, incluyendo los juegos de terceros,

 

causó tensión a sus licenciatarios.

 

Se notificó a las compañías que recibirían menos cartuchos de los que encargaron inicialmente.

 

Algunas tiendas sacaron provecho, incrementando el precio de los juegos a $70.

 

Los analistas estimaban que la oferta de videojuegos

 

sería hasta un 15% menor que la demanda del mercado.

 

Cuando un reportero le preguntó a Peter Main,

 

vicepresidente de mercadotecnia de Nintendo of America,

 

lo que estaban haciendo ante la escasez, respondió:

 

“¿Te refieres, además de rezar y esperar?”

 

Mientras tanto, Nintendo of America había recibido una copia de Super Mario Bros. 3 para análisis, de Japón.

 

Internamente, la compañía sabía que el juego sería colosal.

 

Cuando el Gerente de análisis de productos, Howard Phillips,

 

jugó el juego para su revisión, estaba impresionado:

 

"Para mí, cuando lo vi, pensé que este no era solo otro juego

 

y no solo un juego divertido y desafiante.

 

Era realmente un videojuego por antonomasia".

 

- Howard Phillips.

 

No obstante, se necesitaban hacer algunos cambios.

 

El juego no era tan difícil como el Super Mario Bros. 2 japonés, pero aún demostraba ser un desafío.

 

En la versión japonesa, cuando Mario recibía un golpe mientras tenía un potenciador, se encogía.

 

En la versión norteamericana, Mario se mantendría grande cuando fuese golpeado.

 

Los nombres de los enemigos también tenían que cambiarse, sobre todo, los Koopalings.

 

Dayv Brooks, un localizador de Nintendo of America

 

y un ávido fan de la música, le dio a los Koopalings sus nombres

 

basándose en estrellas de Rock famosas.

 

Cuando posicionó los ojos en un Koopaling con pelo revuelto,

 

inmediatamente pensó en Ludwig van Beethoven,

 

por consiguiente, Ludwig von Koopa.

 

Wendy O. Koopa fue inspirada por la cantante de punk rock,

 

Wendy O. Williams.

 

¿Iggy Koopa?

 

En la estrella Punk, Iggy Pop.

 

Roy Koopa, el que lleva gafas, obtuvo su nombre de Roy Orbison.

 

Lemmy Koopa fue inspirado por el legendario Lemmy de Motorhead.

 

Pero no todos los Koopalings fueron inspirados en músicos.

 

Morton Koopa Jr. le pareció a Brooks un sabiondo, un gran hablador,

 

entonces nombró al personaje por el anfitrión de programa de entrevistas,

 

Morton Downey Jr., denominado el pionero del “Trash TV.”

 

Y en cuanto a Larry Koopa…

 

Ese nombre parecía encajar bien. :)

 

Mientras tanto, los expertos de la industria se preguntaban:

 

¿Cuándo Super Mario Bros. 3, el juego más vendido de Japón,

 

se lanzaría en Norte América?

 

Nintendo of America estaba en aprietos.

 

con la escasez de chips, ni siquiera podían hacer

 

los suficientes juegos para satisfacer la demanda.

 

Pero lo expertos predecían que la escasez terminaría en 1989.

 

Super Mario Bros. 2 acababa de haber sido lanzado y estaba vendiendo bien,

 

sería precipitado traer Super Mario Bros. 3.

 

También estaba el Game Boy, el nuevo sistema portátil de Nintendo.

 

El plan era lanzar el sistema en Verano de 1989.

 

Un juego cómo Super Mario Bros. 3, podría eclipsar el lanzamiento del Game Boy.

 

En vez de simplemente esperar, Nintendo sacó provecho.

 

Planearon lanzar el juego en el primer trimestre de 1990.

 

Históricamente, el primer trimestre del año tenía ventas sólidas de Software.

 

Pasarían 1989 mencionando al juego y construyendo una campaña publicitaria de $25 Millones.

 

En Enero de 1989, 700 mil suscriptores de la revista Nintendo Power

 

vieron el primer avance de Super Mario Bros. 3.

 

Y era simplemente una oración.

 

En la Edición No. 4, un anuncio para la PlayChoice-10,

 

una cabina de máquinas recreativas (Arcade) que incluía títulos selectos de Nintendo,

 

mencionaba que Super Mario Bros. 3 estaba en camino.

 

Nintendo volvió a dar otro avance en la Edición No. 5,

 

cuando hablaron sobre un concurso para ganar un viaje al Summer Consumer Electronics Show en Chicago.

 

Los jugadores le escribieron a Nintendo preguntando acerca del juego.

 

En la Edición No. 6 de Nintendo Power, un lector preguntó si Nintendo lanzaría Super Mario Bros. 3.

 

La repuesta confirmó que llegaría para el PlayChoice-10,

 

pero que “no habían planes inmediatos de lanzarlo para su uso con el NES".

 

Pero en la sección ‘Pak Watch’ en el reverso, donde Nintendo mencionaba futuros lanzamientos,

 

Super Mario Bros. 3 aparecía listado.

 

Para el Verano de 1989,

 

revistas como Electronic Gaming Monthly y GamePro importaron el juego desde Japón

 

y escribieron vistas previas extensas con capturas.

 

Para muchos jugadores norteamericanos, este fue su primer vistazo al juego.

 

Pero para Julio, algunas personas ya estaban jugando Super Mario Bros. 3.

 

El 15 de Julio de 1989, Nintendo lanzó el juego para las máquinas recreativas de PlayChoice-10.

 

Un ejecutivo de Nintendo of America lo llamó:

 

“Lo mejor que hemos producido para el sistema".

 

A pesar de que habían menos PlayChoice-10 que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s,

 

la noticia pareció propagarse rápido.

 

Los operadores informaron que las ganancias de las cabinas del PlayChoice-10

 

con Super Mario Bros. 3 se habían triplicado.

 

Mientras tanto, en Nevada y California,

 

Universal Pictures estaba filmando una película que haría a Super Mario Bros. 3

 

el videojuego más esperado de todos los tiempos.

 

En 1989, el presidente de Universal Studios,

 

Tom Pollock, estaba en apuros.

 

Su película de Los Supersónicos no estaría lista a tiempo para la temporada navideña.

 

Pallock tenía que idear una película alternativa para toda la familia.

 

Durante el año, había sido testigo de la explosión de popularidad de Nintendo

 

y pensó que una película sobre videojuegos sería un éxito.

 

Así que Pollock se reunió con los ejecutivos en mercadotecnia de Nintendo,

 

Bill White y Peter Main, por una colaboración.

 

Su idea era una versión para niños de la película “Tommy”

 

un filme de drama musical sobre un chico discapacitado que se convierte en un campeón de Pinball.

 

Nintendo no podría haber conseguido un mejor anuncio.

 

A cambio de usar sus productos en la película,

 

Nintendo recibió una tasa de licencia y aprobación por el guión y las secuencias de los juegos.

 

Bill White frecuentaba el set de filmación para supervisar la producción

 

“Lo único que nos preocupaba era asegurarnos que el metraje del juego fuera espectacular”, dijo

 

La película se llamó ‘The Wizard’.

 

Contaba la historia de Jimmy, un chico callado que estaba obsesionado con llegar a California.

 

Su medio hermano, Corey, lo saca de una institución mental para llevarlo allí.

 

Durante el camino, conocen a una chica llamada Haley.

 

Corey y Haley pronto descubren que Jimmy es increíblemente bueno en los videojuegos.

 

Deciden ingresar a Jimmy al ‘Video Armageddon Tournament’ en Universal Studios,

 

y dividirse el premio de $50,000 en efectivo.

 

Partieron hacia Los Ángeles,

 

con su familia y un cazarecompensas pisándoles los talones.

 

La película estaba repleta de productos de Nintendo,

 

incluyendo juegos, el Nintendo Power Line

 

e incluso el Power Glove.

 

‘The Wizard’ fue lanzada el 15 de Diciembre de 1989 en Norte América.

 

Fue destrozado por los críticos.

 

Roger Ebert lo llamó:

 

“Un comercial apenas disfrazado para los videojuegos de Nintendo y el tour de Universal Studios".

 

Pero eso no le importó a ningún niño que vio la película.

 

La mayor atracción estaba casi al final de la película,

 

cuando los concursantes del ‘Video Armageddon Tournament’ jugaron Super Mario Bros. 3

 

[“Ahora les presento..."]

 

["¡Super Mario Brothers...”]

 

["3!"]

 

[Sonidos y música de Super Mario Bros. 3 de fondo]

 

Para la mayoría de los espectadores,

 

esta fue la primera vez que vieron imágenes reales de la secuela más reciente de Mario.

 

El dominio de Nintendo en el mercado de los videojuegos y su establecimiento en la cultura popular

 

continuaba creciendo y no había señales de que se detuviera.

 

Solo en 1989,

 

Nintendo recaudó $2.7 mil Millones en ventas al por menor.

 

El NES fue, una vez más,

 

el juguete número 1 por tercer año consecutivo.

 

La consola estaba en un 22% de los hogares estadounidenses,

 

con 20 millones de unidades vendidas.

 

El Game Boy, el nuevo sistema portátil de Nintendo que fue lanzado a principios de ese año,

 

se estaba vendiendo en tiendas.

 

La mercancía explotó, con más de 200 productos de Super Mario con licencia.

 

Departamentos de ‘World of Nintendo’ aparecieron en tiendas alrededor del país,

 

dedicados a vender productos de Nintendo.

 

La revista Nintendo Power aumentó a 1.8 Millones de suscriptores.

 

El Nintendo Power Line, donde jugadores podían pedir consejos para los juegos,

 

recibió 140 mil llamadas a la semana.

 

El entusiasmo alrededor de Nintendo y Super Mario Bros. 3 alcanzó un punto de ebullición.

 

Los niños pedían el juego para Navidad

 

pese a no saber cuándo sería lanzado.

 

No tuvieron que esperar mucho.

 

[Arreglo musical del tema principal de Super Mario Bros. 3 de fondo]

 

- Parte 3 - [ El Mejor ]

 

En Enero de 1990, los suscriptores de Nintendo Power recibieron una nueva edición.

 

Dentro, estaba algo que estaban esperando:

 

Una vista previa oficial de Super Mario Bros. 3

 

junto a un vistazo a la creación del juego tras bastidores.

 

La historia ha demostrado que una vista previa de un juego en Nintendo Power

 

significaba que el verdadero lanzamiento no estaba muy lejos.

 

Al siguiente mes, en Febrero, Super Mario Bros. 3 apareció en tiendas de Norte América

 

a un precio de venta al público de $45.95.

 

Hubo un frenesí.

 

En 2 días, 250 mil unidades se habían ido, se vendió en todos lados.

 

Nintendo no pudo preparar al juego con la rapidez suficiente.

 

Las tiendas lo vendieron en un día.

 

“Cada 2 llamadas que recibimos es sobre Nintendo y Super Mario Bros. 3”,

 

dijo un empleado de Toys “R” Us en Chicago.

 

“Nunca sabemos cuándo lo obtendremos, pero lo venderemos tan pronto como llegue".

 

Pero para cualquiera que haya logrado encontrar una copia,

 

fácilmente era uno de los mejores juegos que Nintendo haya lanzado.

 

“Si Super Mario Bros. 3 fuese una película, en vez de un juego de computadora,

 

competiría por un Oscar".

 

- Paul Franklin, The Courier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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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 Marzo, se habían vendido 700 mil copias.

 

Nintendo of America desató su campaña publicitaria de $25 Millones.

 

Comerciales fueron emitidos por TV,

 

hubieron promociones cruzadas con otras compañías incluyendo Popsicle y Nabisco.

 

NBC emitió una caricatura los sábados por la mañana:

 

“The Adventures of Super Mario Bros. 3”.

 

McDonald’s lanzó una serie de juguetes con las ‘Happy Meal’.

 

Mientras tanto, los competidores lanzaron nuevas consolas al mercado.

 

Sega había lanzado su Sega Genesis de 16-bits.

 

Y después del éxito del PC Engine en Japón,

 

NEC lo llevó a Norte América como la TurboGrafx-16.

 

Pero no importaba, Super Mario Bros. 3 era la charla en los patios de recreo.

 

Los niños presumían de lo lejos que podrían llegar en el juego

 

o compartían secretos sobre dónde encontrar las Flautas Mágicas y nuevos potenciadores.

 

El juego era tan grande y tan lleno de secretos,

 

que Nintendo temía que pudiera abrumar a algunos jugadores.

 

Por lo que en Julio de 1990, Nintendo Power publicaría su primera guía de estrategia completa,

 

protagonizada por Super Mario Bros. 3.

 

Tenía mapas de cada nivel, información de cada enemigo y potenciador

 

y revelaba cada secreto del juego.

 

Fans de todas las edades estaban obsesionados con el juego.

 

Un grupo de fans adultos amó tanto al juego, que lo portearon para PC

 

y lo enviaron a Nintendo, esperando obtener una licencia.

 

Nintendo quedó impresionado, pero declinó la oferta.

 

Eso no inmutó al equipo de John Carmack,

 

John Romero, Tom Hall y Adrian Carmack.

 

Estaban emocionados por su trabajo, y al año siguiente, formaron una compañía:

 

Id Software.

 

Los creadores de Wolfenstein 3D y Doom.

 

Para 1991, Nintendo vendió más de 8 Millones de copias del juego en Norte América.

 

Recaudando más de $400 Millones.

 

Si Super Mario Bros. 3 fuese una empresa,

 

estaría dentro de las 10 mejores compañías de juguetes de Estados Unidos de 1990

 

En aquel entonces,

 

era el videojuego autónomo más vendido de todos los tiempos.

 

Antes de Super Mario Bros. 3,

 

los críticos se cuestionaban si Nintendo era una moda pasajera.

 

El presidente de Electronic Arts, Trip Hawkins,

 

comparó el NES con las muñecas ‘Cabbage Patch’.

 

“Esto es un juguete y eso significa que es una moda", afirmó.

 

Después de Super Mario Bros. 3, no habría más dudas.

 

Nintendo cosechó las recompensas.

 

Sus ingresos estimados para 1990, era de $3.4 mil Millones.

 

Lo que les dio una participación dominante del 88% del mercado.

 

En 1991, superaron a Toyota como la compañía más exitosa de Japón.

 

Nintendo ganó $1.5 Millones por empleado.

 

Pero no todo fueron rosas.

 

La Comisión Federal de Comercio investigó a Nintendo sobre denuncias de violaciones antimonopolio,

 

como la fijación de precios con el fin de vencer a la competencia.

 

Nintendo negó cualquier agravio,

 

pero se le ordenó mandar reembolsos de hasta $25 Millones a los clientes.

 

El reembolso tomó la forma de un cupón de $5,

 

el cual los clientes solo podrían usar para comprar más juegos de Nintendo.

 

En total, Super Mario Bros. 3 vendió más de 17 Millones de copias alrededor del mundo.

 

Cuando se combina con los relanzamientos,

 

se estima que ha vendido más de 30 Millones de copias.

 

Pero fue más grande que solo dinero y cifras de ventas,

 

Super Mario Bros. 3 era una prueba más de que los videojuegos para el hogar

 

podrían ser aventuras enormes y extensas

 

e incluso mejores que los juegos de las máquinas recreativas (Arcade).

 

Shigeru Miyamoto se convirtió en una superestrella.

 

Celebridades como Paul McCartney y Steven Spielberg volaron hasta Japón para conocerlo.

 

Su éxito le aseguró que podría producir o dirigir los futuros grandes lanzamientos de Nintendo.

 

Su siguiente juego de Mario, Super Mario World,

 

fue un título de lanzamiento para la nueva máquina de 16-bits de Nintendo,

 

el Super Famicom, también conocido como el Super Nintendo.

 

Con el Hardware modernizado,

 

Miyamoto fue capaz finalmente de permitirle a su héroe montar un dinosaurio.

 

Otras compañías prestaron atención al éxito de Mario.

 

Sega vio el poder de una franquicia insignia y empezó a trabajar en su propia mascota:

 

Sonic the Hedgehog.

 

Su début en 1991 en el Mega Drive y Genesis

 

creó una competencia legítima en el mercado, llevando a la gran 'Guerra de Consolas' de los 90’s.

 

Incluso después de que Nintendo sacara el Super Nintendo,

 

la gente continuaba jugando y queriendo Super Mario Bros. 3.

 

Fue listado entre los 20 mejores juegos de NES de Nintendo Power

 

hasta que el sistema fuese descontinuado en 1995.

 

Cuando la gente recuerda sus memorias de la infancia con el NES,

 

casi siempre, sin fallar,

 

piensan en Super Mario Bros. 3.

 

Un juego que se siente nostálgico pero revolucionario al mismo tiempo.

 

Un juego que está a la altura de su hype incomparable.

 

[Arreglo musical del tema final de Super Mario Bros. 3 de fondo]

 

[ - Takashi Tezuka - ] Considera a Super Mario Bros. 3 su primera obra maestra. Continúa supervisando o produciendo casi cada título de Mario en Nintendo.

 

[ - Toshihiko Nakago - ] Ahora es presidente de Systems Research & Development, una compañía que ayuda a programar juegos de Nintendo. Nakago, Tezuka y Miyamoto son conocidos internamente en Nintendo como un equipo ideal.

 

[ - Koji Kondo - ] Consideró el tema de Super Mario Bros. 3 como la pieza de música más difícil que haya escrito. Él es aún un compositor en Nintendo.

 

[ - Kensuke Tanabe - ] Ayudó a escribir las historias para varios títulos de Zelda, incluyendo Ocarina of Time. Él es aún un productor en Nintendo, trabajando directamente con desarrolladores externos.

 

[ - Kazuaki Morita - ] Ayudó a programar muchos clásicos de Nintendo. Actualmente es Director en Systems Research & Development y trabaja principalmente en la serie The Legend of Zelda.

 

[ - Katsuya Eguchi - ] Dirigió su primer juego, Star Fox, en 1993. En 2001, creó Animal Crossing, el cual ahora es una de las franquicias más exitosas de Nintendo.

 

[ - Hideki Konno - ] Co-dirigió Super Mario Kart, el cual se convirtió en unos de los juegos más vendidos del Super Nintendo. Konno ahora supervisa el desarrollo de los juegos móviles en Nintendo.

 

[ - Howard Phillips - ] Dejó Nintendo en 1991 para ingresar a LucasArts. Super Mario Bros. 3 fue su 2do juego mejor calificado mientras trabajaba en Nintendo. Phillips no ha revelado cuál es su juego mejor calificado.

 

[ - Peter Main - ] Se retiró de Nintendo of America en 2002. El presidente de Nintendo of America, Minoru Arakawa, declaró: “No habríamos conseguido nuestro éxito espectacular sin él".

 

[ - Shigeru Miyamoto - ] Actualmente cumple su rol como Director Representativo en Nintendo. Es considerado uno de los diseñadores de juegos más grandes de todos los tiempos.

 

Subtítulos al Español (Latino América) por: HéctorGN★ [Este trabajo es dedicado a las personas que mas estima]

 

Escrito por: Norman Caruso

 

Editor de Guión: Kristin Caruso

 

Editado por: Norman Caruso

 

Voces adicionales: Greg Sewart Akfamilyhome Derek Alexander

 

Voces adicionales: Chris Alaimo Chadtronic Clint Basinger

 

Animaciones: Studio Goblin

 

Ilustraciones: Shawn "JPB"

 

Música Adicional: Banjo Guy Ollie Joshiah Everhart

 

Mezcla de sonido: PROXIMITY SOUND

 

Material Audiovisual Adicional: togemet2 OkeijiDragon Grooveraider

 

Material Audiovisual Adicional: BBC Jeff Hansen

 

Imágenes Adicionales: Chris Covell VGMStudios togemet2

 

Agradecimientos Especiales: Alyse Knorr Brian Clark Duke Williams

 

Agradecimientos Especiales: Nintendo Life Landon Barton Adam Sharp

 

La animación isométrica de Mario y el dibujo del centauro fueron recreaciones artísticas hechas para el documental.

 

‘The Wizard’ es propiedad de Universal Pictures.

 

“Los fondos para Gaming Historian son en parte proporcionados por seguidores en Patreon".

 

“Gracias".